"부가세법 몸살" 앓는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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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경=최철주 특파원】10여 년 전 한국이 채택했던 부가가치세의 도입여부를 둘러싸고 일본이 진통을 겪고있다. 야당은 부가세 (일본에서는 이를 매상세라고 함) 도입을 강행하려는「나카소네」 정부에 반발, 한달 이상이나 국회 예산심의를 거부하고 있으며 전국 각 지역에서 부가세 반대궐기대회를 여는 등 대맹부전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자민당 지지기반이었던 유통업자들이「나카소네」수상에 완전히 등을 돌리고 정치헌금 제공을 거부했으며 일부에서는 농민·노동자들이 이에 가세했다. 지난 25년 동안 자민당의 아성이던 이와테 (암수) 현의 최근 삼의원 보궐선거는 자민당의 일대참패로 끝났다.
이것은 부가세 논의에 대한 일본최초의 국민 심판이어서 「나카소네」정부에 주는 충격이 매우 크다.
일본의 세제진통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80년 그린카드제도(실명제) 도임이 결정됐으나 납세자들의 끈덕진 저항 때문에 실시되지 못한 채 지난 85년 집권 자민당에 의해 폐지된 전력이 있다.
지난 79년 가을에는 당시「오히라」 내각이 새로 일반소비세를 부과하려다 역시 실패로 끝났다.
일본정부가 현재 국회에 내놓은 부가가치세제의 골격은 상품과 서비스의 각 유통단계마다 5%의 세율을 적용하는 내용이다. 올해 관계세 법안을 통과시켜 내년부터 실시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84년부터 부가세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한 「나카소네」수상은 85년 7월부터 이를 본격 추진해 왔다.
이 시기에 일본의 세제 개혁팀이 한국을 드나들었다. 「부가세 선진국」 인 한국의 노하우를 배우고 시행착오를 관찰하기 위한 것이다. 이들은 77년에 반년의 준비기간만으로 뇌광석화같이 부가세 도입결정을 내린 한국정부의 「강력한 행정력」에 정탄하면서 한국의 부가세 과세와 집행에서 어떤 마찰이 일어나는지를 면밀히 살펴봤다.
말하자면 선진국형 부가세의 신속한 도입과정을 겪은 한국은 결과적으로 일본의 부가세도입 실험장이 된 셈이다. 「나카소네」수상은 국회 내 야당세가 약하고 노조가 우익화하며 대학의 정치데모도 거의 없는 데다 기업의 재무구조가 탄탄한 때 부가세를 도입하는 것이 가장 안성마춤이라고 생각해서 작년 10월부가세에 대한 정부안을 내놓았다.
지난1월 국회에 제출된 최종안은 일본 세제상 35년만의 대 개혁안으로 ①세율 5%인 부가세의 면세점을 1억엔, 비과세품목은 51개로 하며 ②소득세·법인세를 감세하고 ③저축특혜제도를 폐지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일본정부는 현재 7대3의 직접세와 간접세비율을 6대4의 비율로 조정하는 것은 역사적·국제적 필연성을 갖고있으며 직접세율을 줄이는 재원으로는 부가세 도입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부가세 도입 안이 비밀리에 졸속하게 이루어졌으며 유럽각국의 부가세가 그러하듯 시간이 지나면 점점 세율이 높아져 저소득층의 납세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고있다. 특히 야당인사들은 「나카소네」 수상정부가 부가세를 단행해 방위비를 늘리려는 야심만만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공격하고 있다.
「나카소네」수상은 그의 임기가 끝나는 금년 10월 이전에 부가세법안을 처리하려하고 있으나 야당의 반대뿐만 아니라 당내 원로들의 시기상조론에 봉착해 있다. 더구나 엔고불황 타개를 호소하는 기업들에 부가세제를 몰아붙인다는 것도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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