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김종해 <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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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박종철 군의 49재가 있던 날 나는 종로에서 울었다. 나뿐만 아니라 종로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 심지어 이곳을 지나던 외국인들까지 손수건을 꺼내어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박군에 대한 추모의 정이라든가 애틋함 때문이라기보다 경찰이 쏜 최루탄 때문에 강요된 눈물을 흘리지 않을수 없었다.
셔터가 내려지고 철시된 종로를 걸어가며 나는 문득 구한말의 언론인 장지연 선생이 쓴 「시일야방성대곡」을 떠올렸다. 나라 잃은 망국의 비분 강개함이 담겨진 통한의 명 논설이지만, 그것의 제목이 던지는 묘한 뉘앙스가 강하게 자리 잡혔기 때문이다.
시위 학생이나 진압 경찰의 물리적인 대치 상태를 보는 종로 시민들의 입장은 착잡하다.
박군의 고문 치사 사건으로 동료를 잃은 학생들의 과격한 시위를 우리는 탓할 수 없으며, 이를 저지하는 진압 경찰에 대해서도 괴로운 마음 갖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의 가장 번화한 도심지, 서울의 안방과 같은 종로에서마저 찾은 시위 때문에 종로 사람들은 최루탄 가스에 시달림을 받는다. 대학가 주변의 주민들이 최루탄 때문에 시달리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생업에 종사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최루탄 가스 때문에 겪는 고통과 피해는 이제 인내와 원성의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박군의 49재가 있던 날 종묘 앞 공원 쪽에 열 사람만 모여도 최루탄을 남발하는 경찰의 과잉 저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주장이나 견해가 다른 내 가족 중의 하나가 안방에서 구호를 외치고 시위를 한다고 해서 많은 가족들이 기거하는 제집 안방에다 최루탄을 과연 터뜨릴 수 있는가 하는 도의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도심지에서 터뜨린 최루탄 가스는 시위대가 있는 현장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타고 인구 밀도가 조밀한 인근 지역으로 퍼져 많은 시민들을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시민들을 위해 경찰의 최루탄 사용과 폐기 문제가 좀더 신중하게 논의되었으면 한다. 더 울고 싶지 않은 시민들에게, 이젠 눈물을 강요하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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