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차관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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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부취관보를 미국에서는 「데퓨티 어시스턴트 세크러터리」라고 한다. 「데퓨티」는 「대리」, 「어시스턴트」는 「보조자」라는 뜻이다.
미 국무생의 직제를 보면 큰 나라답게 층층시하다. 맨위에 장관(세크러터리)이 있고, 그밑에 부장관(데퓨티 세크러터리)이 있다. 부장관아래엔 차관이 있는데, 언더세크러터리라고 한다. 장관, 부장관은 한명씩이지만 차관은 4명이나 된다.
차관밑엔 11명의 「어시스턴트」가 있다. 요즘 대한발언이 잦은 「시거」는 어시스턴트 세크러터리로 우리는 그 직명을 차관보라고 부른다. 차관보아래엔 다시 데퓨티 어시스턴트가 있다. 역시 11명이다.
엊그제 우리나라에 와서 여야지도자와 대좌해 『이민우총재의 7개항 제의에 관심이 있다』는등 의견개진을 한 「클라크」의 직명은 데퓨티 어시스턴트다. 부차관보.
우리나라 외무부의 직제로 따지면 과장과 국장 사이의 직급이다. 부국장이라는 직제는 없지만, 그와비슷한 레벨이다. 심의관쯤에 비교하면 큰 차이 없을 것이다.
여당의 한 고위간부는 『미국 관리 한사람 왔다고 여야지도자들이 줄줄이 그와 만나는 행태가 과연바람직한가』라고 약간 볼멘 얘기를 했다.
미국관리 특정인에 관한 코멘트라기 보다는 그의 타이틀(직급)에 대한 반응으로 생각할수 있다. 비록 미 국무성의 「밀령」을 속주머니에 넣고 온 손님이라고는 해도 그에 대한 대우는 나라의 체면을 생각해 가며 해야 옳다. 그가 샌터클로즈 할아버지라도 그렇다.
우리나라 외무부의 심의관이 미국조야에서 어느정도의 대접을 받을수 있을까도 조금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물론 대국과 소국의 차이는 있겠지만 오늘이 제국주의 식민지시대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중급미국관리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거나 콧대를 세우기에 앞서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오죽하면 미국 관리가 눈치불구하고 서울에 날아와서 이러구 저러구 참견을 하겠는가.
부차관보라는 사람은 제발로 걸어왔다기보다는 우리의 상황이 그를 끌어들인 면도 없지 않다는 것을 작은 소리로나마 시인해야한다. 그점에서 얼굴이 뜨거워지지 않는 정치인이 있다면 목우이다.
외세는 마치 감기몸살과도 같아 우리가 피곤하고 지쳐서 약해져있을때 슬그머니 끼어들게 마련이다. 지금도 늦지 않다. 우리 정치인들은 빨리 우리 정치를 되찾아 제자리에 갖다놓고 게임을 시작하면 누가 훈수(訓手)할 겨를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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