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시위 고수…여야, 대권 욕심 버리고 ‘단일 해법’ 찾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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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 농단 원로 8인이 본 해법

“정치인은 비겁하고 그들 때문에 국민들만 아프다.”

류우익 “초헌법 조치 땐 후유증 커”
김원기 “당·대선주자 한목소리 내야”
김형오 “야당 무임승차 땐 역풍 분다”
박관용 “거국내각·탄핵 중 절충안을”

류우익 전 통일부 장관이 17일 현재의 정국 상황에 대해 진단한 말이다. 그는 “여야 누구도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지 않고 정치적 이해득실만을 따지려 한다”고 지적했다. 각계 원로 8인에게 최순실 사태가 촉발한 현 시국에 대한 해법을 물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거취를 놓고 ▶즉각 하야 ▶시간을 정해놓은 하야(질서 있는 퇴진론) ▶탄핵 ▶2선 후퇴론이 충돌하고 있지만 상당수 원로가 헌법 테두리 안에서의 해결을 요구하면서 탄핵을 해법으로 꼽았다.

◆헌법 테두리 안의 해결책은 탄핵

류 전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은 탄핵을 안 할 것이고, 새누리당 비박은 탈당을 못 할 거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버티는 것”이라며 “탄핵이 후과(後果)가 없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초헌법적 조치를 주장하면 대통령 하야 후 엄청난 후과가 발생한다. 지금 당장 하야하면 앞으로 어떤 대통령이든 광화문광장에 100만 명이 모이면 그만둬야 하는 비극적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야당의 우려대로 보수적인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을 기각하더라도 이 역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야당이 ‘대통령은 끝났다’면서도 대통령의 결단만을 요구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며 “야당이 법적 테두리 안의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민심에 무임승차하다가는 분노한 민중의 여론이 국회를 향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관용 전 의장도 “법치국가에선 헌법에 합치하는 해결책이 필요하다”며 “이미 나와 있는 거국중립내각과 탄핵 중 절충안을 만들어야지 정치권이 자기 욕심만 내고 있다”고 했다. 소설가 황석영씨도 “야권이 그동안 거국중립내각이란 패를 너무 빨리 깠는데 새 총리를 뽑아 대통령 권한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나가면서 그런 방식을 추진하되 탄핵의 순서도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야권과 비박이 정치적 연대를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등은 ‘탄핵 연대’를 요구했다. 송 교수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 간에 얘기가 잘되면 좋은데, 잘 접합이 되겠느냐”며 “탄핵의 시발점은 새누리당 비박계의 탈당에 따른 분당”이라며 “정당 구조의 재정렬이 일어나지 않을 경우 정치권이 주도하는 탄핵은 어렵다”며 “새누리당을 탈당한 비박계를 중심으로 야권과 접합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류 전 장관도 “여야 모두에게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그런 정치인이 없다면 국가가 불행해지고 국민이 희생을 치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정부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전 민주당 의원도 “지금은 구국의 상황이니 선거를 앞둔 정략을 제치고, 국회와 당이 중심이 돼 단일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여야를 막론하고 여당 비박계에는 야당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이 많으니 다들 모여서 수습안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결국 탄핵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당을 이끌고 있는 사람이나 대선후보들도 당장의 경쟁보다 더 큰 장벽을 함께 넘어야 하는 입장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황석영씨도 “야당이 이 판국에 순혈주의에 치우쳐 여당 내 비박계까지 ‘너희도 다 똑같다’고 밀어붙여선 안 된다”며 “서로 연대하는 정치적 묘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촛불시위 비폭력 고수해야 의미

유인태 전 의원은 “대통령이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 (이번 주말 집회 등에서) 자칫 불상사가 생기면 불행해지는 것”이라며 “다시 옛날로 돌아가버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폭력저항운동의 기미가 보이면 보수진영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다시 조금씩 결집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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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문열씨는 “내 기분도 거리에 촛불 들고 나온 사람들과 다르지 않고 몸에 오물이라도 묻은 것 같은 더러운 기분”이라면서도 “그런 기분을 자제한다면 6개월 뒤의 혁명 정부가 되느냐, 14개월 뒤의 정상적 절차에 의한 정부를 선출하느냐를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조기 대선으로 6개월 뒤 혁명 정부가 들어서면 강경투쟁을 압박한 사람들의 요구에 시달려 과격성과 잔혹성을 띨 것”이라고 분석했다.

황석영씨는 “지금은 혁명의 시대가 아니다”며 “100만, 200만 촛불로 계속 압박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을 조금씩 제외시켜나가는 게 지혜로운 정치행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촛불시위는 평화적인 걸 고수해야 한다. 비폭력을 고수해야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강태화·이충형·이지상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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