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연행은 연행 아니다"|사회부 정순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당국이 발표한 연행자 숫자가 실제와다른데 어떻게 된거지요?』
『일시 연행자는 격리 차원의 「피보호자」지 연행자가 아닙니다』
3일 하오 전국이 홍역을 앓은 박종철군49재 행사의 뒤끝. 연행자 숫자를 놓고 경찰과 보도진 사이에 예의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경찰은 격리 차원에서 일시 연행한 사람들은 연행자 범주에 넣을수 없다는 주장.
그래서 경찰의 공식발표로는 3일 하오6시현재 서울에서의 연행자만 남자 1백49명, 여자 22명등 겨우 1백71명 (조사대상 연행자 최종집계는 1백93명).
그러나 경찰이 6시현재 연행자 집계를 공식발표한지 1시간후인 하오7시 서울시내 각경찰서에 격리차원에서 보호(? 를 받고 있던 실제 연행자는 6백46명으로 확인됐다.
경찰 발표는 실제보다 4백75명이나 숫자를 줄인 셈이다.
이들 연행자들은 모두 분명히 백주대로에서 많은 시민들이 지겨보는 가운데 경찰에 의해 강제 연행됐다.
어느 여학생은 머리채를 잡혀 닭장(경찰호송버스)에 실렸고, 시위를 지켜보던 행인도 해산명령에 불응한다는 이유로 시위꾼으로 몰려 팔목이 뒤로 꺾인채 연행됐다. 또 어느 회사원은 점심먹으러 길거리에 나섰다가 영문도 모른채 경찰차에 실리기도 했다.
안개처럼 자욱한 최루가스속 「초장신속진압」 명령에 따라 결국 무리한 연행이 강행된 셈이다.
「격리 차원」연행은 연행이 아니라는 경찰셈법은 연행자 숫자를 될수록 줄임으로써연행과정에서의 과오를 감추려는 얕은 꾀만 같다.
그러나 숫자를 줄여 발표한다고 사실이 달라질수 있을까. 경찰 주장대로 수사목적의연행자만 연행자라고 한다면 「보호」 차원 연행자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강제로 경찰차에 실려 몇시간씩 신체의 자유를 제약당한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연행된게 아니라 보호를 받는것』이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이제는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숫자 줄이기 놀음은 그만두자. 그렇게해서 시위 규모를 축소해 보이거나 과잉 진압없이 신사적(?)으로 대처한 것처럼 꾸민들 과연 몇사람이나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겠는가. 『책상을「탁」치니「억」하고 죽었다』식의 거짓발표로는 국민들의 불신만을 부채질할뿐이다.
당국의 발표와 실제가 일치하는 날이 신뢰의 정치, 신뢰의 행정으로 가는 첫걸음일것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