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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다른 듯 같은 박근혜와 추미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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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양선희 논설위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대로 한 건 올렸다. 월요일 아침 불쑥 추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양자담판을 제안했다더니 한나절 만에 안 한다고 뒤집었다. 정가는 벌집 쑤신 듯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다른 야당 대표들도 화를 냈다. 가뜩이나 ‘야당에 총리를 뽑으라면 뽑을 능력은 있느냐’며 공조 능력을 의심받는 마당에 최대 야당 대표라는 이가 뜬금없이 돌출행동을 하니 말이다.

공조직 무시하고 불통 보인 추미애
박근혜 비난하며 행동양식은 닮아

어이없기는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이제 보니 여야 영수에 박근혜만 둘”이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둘의 행동양식이 너무 유사해서다. ‘공조직 무시, 비선 의심, 불통’. 박 대통령이 비난받는 3대 행동양식을 추 대표도 그대로 복사했다. 그는 이미 ‘가다 가다 뜬금포’ ‘이상한 리더십’ ‘독불장군’이라고 불린다. 모두 박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말들이다.

추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을 사전에 알았던 당내 인사는 몇 명 안 됐단다. 민주당 의원 대부분이 날벼락 맞듯 알게 된 거다. 대통령이 정부 공조직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다 국가 위기를 맞은 이 사태에 야당 공조직도 발동되지 않았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당내에선 ‘비선 라인’ 문제가 제기됐다. 일각에선 이번 영수회담 제안에 김모 전 의원 등 비선 조직이 움직였다는 의혹도 나왔다.

그의 불통과 이상한 행보는 처음도 아니다. 지난 8월 말 당 대표에 당선된 뒤 뜬금없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예방하겠다고 했다가 거센 반발에 취소했다. 2009년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당시엔 당론과 달랐던 복수노조 1년6개월 유예,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6개월 유예 등을 골자로 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수정안을 야당 의원들의 출입을 막은 채 한나라당 의원들과 통과시켰다. 이후 쏟아진 비난에 ‘소신’이라며 버텼다. ‘소신’ 좋다. 한데 정치는 합의와 타협의 예술이다. 제 맘대로 하려면 정당정치를 하지 말았어야지.

추 대표가 정치 입문 이래 위기를 돌파하는 내공과 지적 능력으로 인정받은 사례가 있었나. 기억나지 않는다. 소위 소신 때문에 불신을 받은 사례는 몇 개 기억난다. 리더라면 자기 소신이 정답도 해답도 아닐 수 있다는 겸허함 정도는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 말에 귀 기울여지고 소통이 시작되는 거다. 소신 하나만은 대찼던 박 대통령이 저질러 놓은 이 난맥상을 보라.

난파하는 배 위에서 출구를 막고 아무도 뛰어내리지 못하게 하면서 ‘선장의 책임’ 운운하는 자기 파멸적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도 있는데 왜 추 대표에게만 가혹하냐고 욕먹을 수도 있겠다. 여성 리더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성 리더들은 왜 이러냐” “십수 년간 정치를 취재했지만 이런 예측 불가능한 리더십은 처음 본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난 2일자로 쓴 칼럼 ‘여성 리더십의 약점’에 여성 리더는 측근 정치와 공적 제도의 무시 및 불통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 칼럼을 들어 박·추를 보니 이게 여성 리더십의 약점이 아니라 특징 아니냐며 에둘러 비꼬는 말도 들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이 ‘대통령 이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이유로 검찰 수사를 회피하는 비겁까지 보태자 ‘감성팔이’도 모자라 ‘여성팔이’를 하느냐는 비판도 쏟아진다.

물론 두 사람의 성향이 여성 리더의 대표성을 가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여성 리더십의 특징을 규정하기엔 아직은 우리나라의 모집단이 너무 적다. 하나 걱정스럽긴 하다. 벌써 민주당에서도 “2년 임기가 너무 길다”는 소리가 나온다. 우리는 “임금이 크게 잘못하면 재차 간언하고 그래도 안 들으면 끌어내려야 한다”는 맹자의 정치사상을 계승한 사회에 살고 있다. 불통의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해 100만 시민이 질서 있게 촛불을 드는 나라다. 끌어내려야 할 후보 명단에 두 명의 대표적 여성 정치인이 오르내리는 건 암울하다. 이제라도 귀를 열고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마지막 용기를 보여 주길 바란다. 여성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