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드라마 『불새』쇼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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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TV드라머에 「불새 쇼크」 가 몰아치고있다. 『불새』 는 MBC-TV가 지난2일부터 매주 월·화요일밤 방영하고있는 국내TV사상 처음으로 시도된 8부작 미니시리즈 제1편으로 79년 작가최인호씨의 동명신문연재소설을 김한영PD가 TV드라머화한 작품. 그러나 『불새』 는 1, 2회분부터 방송심의위원회의 제재로서는 가장 무거운 「경고」 조치 (경고3회면 드라머방영 중단이 관례임)를 받음으로써 시작하자마가 찬서리를 맞았다.
『불새』는 이에따라 지난9일밤 3회방영직전 『 「불새」는 부도덕한 애정행각과 범법행의를 무비판적으로 묘사했을뿐아니라 계층간의 위화감을 조장하고…』 는 내용의 수치스러운 멘트와함께 자막까지 고지했다. 첫회방영후경고조치를 받기는 국내TV드라머 사상 『불새』 가 처음이다.
『불새』의 경고조치는 지난해 공륜파 영화사측의 일전을 초래했던 『허튼소리』처럼 곧바로 방송가에 충격을 몰고왔으며 이는 방송심의위원회의 심의수위에 대한 반발, 즉 TV드라머의 윤리성과 작품성논쟁으로 비화됐다.
즉 그간 일방적으로 가해졌던 경직된 윤리적 심의기준이 TV드라머의 예술성·극적 완성도·리얼리티·전체적인 작품성을 크게 떨어뜨려 질적저하 현상은 물론 제작 위축현상까지 조장한다는오랜 불만이 한꺼번에 튀어나오고 있는 것이다.
방송심의위산하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소위 (위원장정원직서울대교육학과교수)는 지난6일 『불새』 경고 조치를 결정하면서▲혼인문제와 가정의 순결성을 해칠우려▲재벌2세와 그 복잡한 가족구성원들의 퇴폐적인 타락상에대한 지나친 묘사▲비밀도박장의 상습도박▲음주운전과 과실치사후 뺑소니, 그후 위장자수등에서 보이는 국가행형제도 무력화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불새』 의 원작자 최인호씨는 『나는 이 작품에서 인간이 끝내 선택할수밖에 없는 진실과 구원을 보여주기위해 불가피하게 악을 동원했다』 고 반발하면서 『신을 빛가운데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먼저 쓰레기와 그늘을 보여주어야 한다』 고 말했다.
예컨대 미친 여자의 저주받은 사생아 「영후」가 끝내「현주」 라는 진실을 얻기위해 모든 욕망을 포기하고 「미란」 의 총에 사살됨으로써 죽음을 통한 사랑의 완성과 악의 단죄를 받는다는 줄거리는 악이 성으로 가기위한 불가피한 구원의 절차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이어 『도대체 시청자들이 구원을 향해 기어가는 악과 쓰레기를 보고 구원을 택하겠는가,악을 택하겠는가』반문하면서 심의위원회의 이번 처사는 시청자들을 경시하는 태도와 다름아니라고 분개했다.
『불새』 의 연츨을 맡은 김PD는 최근 아내와 자식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의사이야기를 다룬 KBS의 외화 『뜨겁고 긴 계절』이나 과거 가족구성원들의 엇갈린 정사등을 묘사한 『댈라스』 등은TV에서 용인해주면서 왜 국내드라머만 페쇄적인 단죄의 그물속에 갇혀야하는가 반문했다.
또 이병훈MBC드라머 제작부장은 『가뜩이나 소재제약속에서 허덕이는 TV드라머에서 인간본성을 묘사하기위해 최대한 윤리적으로 순화시킨 리얼리티 마저 빼앗아가면 드라머의 설땅은 없어질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방송평론가 정의용씨는 『8회라는 짧은기간중에 시청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미니시리즈 특성상 전체를 꿰뚫는 지품성과 윤리성은 마지막에서 판가름나야 하며 1∼2회만 보고 단죄한다는것은 성급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고 평론가 신규호씨는 『방송사측의 예술성과 윤리성에 대한 자율적인 고민을 우선 이해하고 TV시청자들의 윤리적 소화능력을 또한 인정해야 고급 드라머시대가 열릴것』 이라고 내다보았다.
한편 『불새』 를 본 시청자들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드라머와는 분명히 다른 자극적인 장면이 많은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을 「흉내를 내고 싶은 유혹」 보다는 「신선한 충격」 으로 받아들였으며 경고조치를 받은이후 『불새』를 더 많이 보게됐다고 말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불새』 사건을 통해 방송가에서는 시청자들의 윤리적 감수성이 종전보다 크게 성숙해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으며 이와함께 이제는 심의규정도 드라머작품성을 염두에둔 융통성있는 방향으로 수정되어야한다는 폭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기형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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