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학교에서는…<13> 내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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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교장선생님이세요? 저는2학년 학부형인데요. 어제 ×반 교실에서 커닝하는 학생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고계셔요?』
학년말고사가 한창이던 지난10일상오. 서울강북의 사립 A고교 교장실. 첫시간 시험 점검을 위해 막 일어서려던 L교장 (56) 은 야멸치게 쏘아붙이는 어떤 어머니의 전화목소리에 울화를 겨우 참았다.
커닝방지를 의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감독교사들을 독려하던 참에 학부형의 고발전화가 걸려 온 것이다. 학생은 서로가 경쟁자고 감시자. 어머니를 통해 고발한다. 동료가 커닝으로 좋은 점수를 받으면 자기는 피해자가되기 때문이다.
1년에 4번 정기시험이 시작되면 A고교엔 비상이 걸린다. 「내신말썽」 때문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 강도가 높아진다. 이는 A고교만이 아니다.
우선 시험문제 출제및 문제지 관리에서부터 비상이 걸린다. 담당교과별 교사들이 시험범위를 나눠 문제를 공동출체하면 과 주임을 통해 교감·교장에게 제출돼 검토를 받은뒤 문제는 교장실 금고에 보관된다.
보통은 객관식 90%, 주관식 10%. 채점은 잡음을 없애기위해 컴퓨터로 한다. 따라서 주관식 문제는 영어·수학·국어등 필수 과목에서 일부분으로 한정되며, 문제도 이론의 여지가 없는 단답형. 말썽때문에 모든 문제를 객관식으로 출제하는 학교도 적지않다.
문제지는 학교 인쇄실에서 인쇄된다. 교장·교감·교무주임 이외엔 출입이 금지된다. 인쇄가 끝난뒤엔 파지까지도 교감책임하에 소각되고, 문제지는 반별로 포장돼 다시 교장실 금고에 입고된다.
이처럼 철통같은 단속도 뚫릴 때가 있어 심심찮게 말썽이 되기도 한다. 학생들의 숫법도 그만큼 절박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사립D고교는 문제 누출사고로 곤욕을 치렀다. 3학년 중간고사중 일부 학생들이 아직 시험도 치르지 않은 국어와 영어의 정답을 외고 다닌것이 발단.
이에 학생들은 집단으로 시험을 거부하는 소동을 벌였고 학부형들이 들고 일어나 항의하고 덤볐다.
학교측은 조사결과 교사의 잘못을 인정하고 시험을 무효화하기에 이르렀다.
국어의 경우 한교사가 선도대상학생을 위해 문제집에서 주요내용을 정리해준 것이 그대로 출제됐고, 영어는 담당교사가 자습시간중 교탁뒤에서 문제와 정담을 최종검토할때 맨 앞자리에 앉은 학생이 교탁의 틈새로 이를 훔쳐보고 친구들에게 전파했던 것이다.
시험반 편성에도 비상수단이 동원된다. 시험날엔 학생들의 대이동이 벌어지고, 어떤 교실에 들어가는지는 직전까지 극비에 부쳐진다.
한 교실에 학년이 다른 2개학년생이 각각 30멱씩 배정되고 좌석 배열방식 또한 수시로 달라진다. 학력고사방식(앞뒤 좌석의 학년이 다르게 배열)으로 하면 앞뒤 커닝은 막을수 있으나 옆자리끼리의 부정이 문제되고, 옆자리를 다른 학년으로 하면 또 앞뒤 커닝이 문제가 돼 말썽. 좌석 배열방식은 물론 교실도 시험당일 발표하게된다.
채점은 대부분 컴퓨터로 한다. A고교의 경우 같은 재단내의 상고에 설치된 컴퓨터를 이용한다.
일단 채점이 끝나면 과목별 점수표를 학생들에게 배부, 각자의 점수를 확인하게하고 이의신청을 받는다. A고교의 경우 매회 15명쯤 이의신청을 하지만 채점착오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수험생의 오기 (誤記) 로 나타난다는것.
그러나 내신이 갖는 문제는 더 근본적인데 있다. 『말썽이 두려워 진짜 교육을 위한 평가 (시험) 를 포기해야하고,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전기의 학생들이 점수에만 집착하면서 서로가 긴장속에 경쟁관계로만 3녀을 보내야하는 분위기가 더 큰 문제』 라는 서울 강남의공립S고K교사는 『더구나 하번 정해지면 그 다음에 아무리 잘해도 고칠수 없다는 점때문에 어떤때는 젊은 학생을 자포자기로 몰고가기도한다』고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해다. <한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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