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쉬워졌다|어려운 한문 피해 한글 전용 부쩍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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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낯선 제목의 문학평론집들이 쏟아지고 있다. 『인간아 인간아』『한심한 영혼아』『한 완전주의자의 책읽기』『책읽기의 괴로움』 『두꺼운 삶과 얇은 삶』…제목만봐서는 시집인지 수필집인지 혹은 소설책인지 알수 없다.
지금까지 문학평론집들 이라고 하면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상황과 상상력』『문학과 민족』『한국문학의 위상』등 한자조어를 사용, 이론적인 관념과 엄숙한 논리를 상징하는 딱딱한 제목들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최근 부쩍 눈에띄기 시작한 낯선 얼굴의 평론집들은 단순한 신기함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여진다. 아울러 이들「낯선」이름들이 사실은 아주「익숙한」우리말이라는데 생각이 미치면「평론집=어러움」이라는 독자들의 고정관념이 아직까지 얼마나 단단한지는 손쉽게 느낄수 있다.
이같은 한글제목달기는 무엇보다도 한글세대가 이제는 독서층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는데서 비롯됐으리라는 것이 많은 평론가들의 견해다.
「평론=논리=한자」라는 고정관념이 한글세대들에 의해 급격히 파괴됨에 따라 비평문제의 한글화는 물론「마지막 엄숙함」으로 남아있던 평론집의 제목까지 한글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독서층의 압도적 다수를 이루고있는 한글 세대들에게 평론가들이 직접 다가서려는 노력과도 다름아니다.
한글 제목달기의 또다른 이유는 한글제목이 한자제목보다 평론가들이 전달하고 싶은 문학관이나 세계관등의 미묘한 뉘앙스까지 명료하게 전달해쫒고 있다는데서 비릇된다.
「소설속에 나타난 군상들에 대한 연민어린 야유」를 상징하기위해 『인간아 인간아』라는 제목을 선택했다는 평론가 정현기씨는 『한자에대한 한글의 논리콤플렉스는 이제 거의 깨어졌다』면서 일본식조어법의 한자제목을 파괴하는 현상은 앞으로 가속화될것이라고 전망한다.
비평의 한글화에 앞장서온 평론가 김현씨의『책읽기의 괴로움』은 「책읽기가 괴로운 것은 책읽기처럼 세계를 살수도, 읽을수도 없기때문」이라는 저자의 생각이 명쾌하고 괴롭게(?) 나타난 예라고 볼수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시구를 인용해 「욕망을 현실속에서 추구하려 하지않고 언어속에서 추구하고자 하는문학인의 한심함이 곧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갈증」이 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남호씨의 평론집『한심한 영혼아』도 책제목을 통해저자의 문학관을 단적으로표현한 좋은 예.
『한 완전주의자의 책읽기』를 펴낸 장석주씨는 『이같은 평론집의 한글 제목달기가 앞으로는 사회과학서적의 제목으로까지 파급될것』이라고 전망했다.
어쨌든 독자들로서는 엄숙하기만 했던 평론집 제목들이 재미있어지는 것이 즐겁다. 이들 평론집들은 또한모두 한글로 씌어있어 읽기에도 부담이 없다. 쉽게 읽히는 글이 깊이가 없는 것은 또한 아니므로. <기형도기자>@@<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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