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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경제부총리가 서야 할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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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종윤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김종윤 경제부장

김종윤
경제부장

비선 정치가 공화국을 유린하든, 무당 정치가 민주주의를 능멸하든 나라는 돌아간다. 대통령이 식물이 돼 2선으로 물러나든, 전면에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든 나라는 굴러간다. 대통령이 하야를 하든, 탄핵을 당하든 나라는 문제없이 운영될 거라고 난 믿는다.

초유의 헌법 파괴 사태에 대한민국 경제도 표류
여야는 부총리 청문회부터 열어 경제 리더십 세워야

하지만 경제는 그렇지 않다. 경제가 무너지면 국가도 무너진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은 이미 종말을 고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제2항). 박 대통령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최순실 세력은 대통령을 등에 업고 나라를 쥐락펴락했다. 헌법을 훼손했다. 박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의 자격을 잃었다.

민심은 분노했다. 민심을 달랠 정부, 청와대, 국회는 길을 잃었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있다. 대신 새로운 권력을 위한 다툼만 치열하다.

정치만 홀로 길을 갈 수 없는 법이다. 정치의 행선지는 결국 경제다. 정치의 혼란은 곧 경제 불안으로 이어진다. 대한민국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이미 각종 지표들은 위험하다는 신호를 잇따라 보내고 있다. 9월 생산·소비·투자는 전월 대비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수출도 마이너스에서 돌아서지 못하고 있다. 나라 밖에서 한국호를 바라보는 시각도 나빠지고 있다.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녹록지 않은 경제 현안도 쓰나미처럼 몰아칠 기세다. 조선·해운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서 대규모 실업의 그림자가 두터워지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한국은 물론 세계 경제 지형이 요동칠 수 있다. 가계 부채는 1300조원에 달하는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곧 기준금리를 올릴 요량이다. 금융시장은 얇은 얼음을 밟듯 위태롭기 짝이 없다. 경제 체력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경제가 벼랑 끝으로 몰렸을 때 최대 피해자는 서민·중산층이다.

그런데도 이 난제를 헤쳐갈 경제 사령탑이 분명하지 않다. 둘이라고 할 수도 있고, 아예 없다고도 할 수 있다. 혼선은 심해지고, 불안은 깊어진다. 현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의욕적으로 일을 챙길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후임으로 내정된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마찬가지다. 금융위원장으로 직무를 수행하지만 경제부총리로 앞에 나설 수는 없다. 그의 인사청문회는 여야의 정치적 타협이 없으면 열릴 수 없는 구조다.

김병준 총리 후보자 카드는 애초부터 성사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박 대통령이 국회와 협의 없이 그를 총리 후보자로 지명하는 순간, 김병준 후보는 총리가 될 수 없는 신세가 됐다. 김 후보자도 현실을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그는 “내가 걸림돌이 될 이유는 없다”고 했다. 문제는 경제부총리다. 임종룡 후보자도 걸림돌이 되고 싶지는 않을 게다. 그도 김병준 파동에 휩쓸려 사실상 사석(死石)이 됐다. 경제 현안을 챙기려면 분초가 급하다. 총리에 이어 경제부총리 후보자까지 낙마시킬 필요는 없다.

박 대통령은 8일 국회를 찾아 “여야 합의로 총리를 추천하면 임명하겠다”고 말했다. 일부 논란은 있지만 사실상 거국내각 구성 권한을 국회에 주겠다는 의미다. 새 총리 후보자를 찾는 데만 만만찮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셈법이 다른 여야가 최적의 인물을 찾는 데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경제부총리 후보 결정은 총리 후보자 합의 이후로 미뤄질 공산이 크다. 그 기간 동안 선장 없는 대한민국 경제는 안갯속에서 항로를 잃을 수 있다.

경제가 최악의 폭풍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데 분노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제안한다. 경제부총리 임명 절차를 먼저 밟자. 법에 따라 현 총리가 여야와 합의해 능력 있는 후보자를 지명하는 방식을 취하면 된다. 청와대도 경제부총리 임명 건을 국회에 넘기겠다고 했다. 여야는 경제 현안을 제대로 챙길 후보자를 고르면 된다. 이미 지명된 임종룡도 좋고, 새 후보자도 괜찮다.

마침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는 경제부총리 후보부터 국회가 나서서 검증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7일 “경제 문제는 하루도 늦출 수 없기 때문에 경제부총리 후보가 나왔으면 이번 주 내라도 국회에서 검증해 결정하자”고 말했다.

경제부총리 인사청문회는 국회의 소관 상임위만 거치면 된다. 국회에 별도의 인사청문특별위원회를 구성할 필요도 없다. 여야 의원들은 오로지 무너지는 경제를 되살릴 수 있을지 후보자의 능력만 따지면 된다. 이렇게 임명된 경제부총리는 즉각 비상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위기 극복 사령탑의 역할을 하면 된다.

헌법이 파괴되는 유례없는 사태에도 국민은 의연하다. 묵묵히, 성실히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런 땀과 노력이 쌓여 이 나라가 여기까지 왔다. 비록 위태로울 때도 있었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멈춰서는 안 된다. 이제 정치가 답해야 한다. 대통령도, 총리 지명자도 2선으로 후퇴할 수 있지만 경제부총리에게 2선은 없다. 지금, 경제부총리는 제1선에 서야 한다.

김종윤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