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세가지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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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집권 1년을 앞둔 필리핀의 「아키노」대통령이 지금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다.
오는 2월2일은 말썽 많은 신헌법의 국민투표일이다. 그 날을 열흘 앞두고 지난 22일 농민들이 토지개혁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군중을 향해 경찰군이 총을 쏘아 15명이 사망했다.
이로 인해 민심이 소란한 가운데 27일에는 군인들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나 한때 공군기지와 TV방송국을 점렴했다. 이것은「아키노」집권이후 네 번째의 쿠데타 기도다.
이들은 대부분 격퇴, 진압됐지만 필리핀 정국은 극도의 혼란속에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아키노」여사에 대한 시련은 세 방향에서 오고 있다.
그 첫째가 우로부터의 도전이다. 이 복고적인 반정부 세력은 「마르코스」잔당인 구정치인 중심의 민간인들과 최근 쿠데타를 기도했다가 국방상직에서 해임된 「엔릴레」중심의 군인들로 구성돼 있다.
최근 잇달아 기도된 쿠데타와 농민시위대에·대한 총격은 이들 우파세력에 의해 계획된 것으로 널리 추측되고 있다.
경찰군은 바로 「마르코스」정권을 떠 받쳐 온 무력으로 군부 우당을 형성하고 있다.
그들의 발포는 「아키노」정부를 국민 인기로부터 분리하여 그 권의를 약화시키려는 기도로 해석된다.
다음은 좌로부터의 도전이다. 공산세력인 신인민군은 「아키노」정부와 일시적인 휴전에 들어가 있지만 언제 다시 포문을 열지 모르는 상태다.
그들은 60일간의 휴전기를 이용해 국민들에 대한 선무공작을 강화하면서 전력정비에 혈안이 돼있다.
더구나 「아키노」대통령의 대공 온건노선은 군부와 우파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휴전에 대한 그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세째는 하부로부터의 도전이다. 그것은 노동자, 농민 등 급진적 개혁을 요구하는 대중세력이다.
노동자들은 임금인상과 근무환경의 개선을, 농민들은 토지개혁을 요구하며 연일 시위를 벌여왔다.
저개발국가에서의 민주화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님은 제2차대전이후의 신생국 정치가 이미 입증해 주었다.
그것은 주로 국민적 통합의 결여와 취약한 지도력, 그리고 국민들의 성급한 과잉기대에 원인이 있다.
「아키노」대통령이 당면한 딜레마도 그런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필리핀 정치가 필요로 하는 것은 국민의 지지에 .바탕을 둔 강력하고도 능률적인 지도력과 점진적 결실을 기다리는 국민들의 자세다.
「아키노」여사는 「마르코스」붕괴이후의 어려운 정국을 잘 관리해 왔다. 그러나 그는 결코 정치훈련을 쌓은 직업정치인 출신의 지도자가 아니다.
지금까지의 대통령으로서의 그의 지위도 정통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모호한 위치였다.
반정부세력의 도전과 최근의 사회적 혼란은 그가 신헌법을 제정하면서 선거없이 헌법투표만으로 대통령 임기를 1기 더 연장한데서 오는 반발임을「아키노」여사는 알아야 할것이다.
다음은 필리핀 국민들이 과잉기대를 포기하고 새로이 탄생된 허약한 민주정부를 가꾸어 나가는 지구력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키노」대통령과 필리핀 국민의 현명한 결단이 없으면 필리핀의 안정과 민주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우리는 이 신생민주국이 지금 아시아에 태동하고 있는 신여민주국가군의 선두주자가 되기를 기대하며 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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