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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는 고구려 중시론자, 현대사는 1948년 건국론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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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국정교과서 도입에 반대하는 시민단체가 국정 한국사·역사 교과서를 쓴 집필진 또는 이를 심의한 편찬심의위원으로 전·현직 교수 9명을 지목했다. 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역사정의실천연대·전교조 등 전국 484개 관련 단체로 구성돼 있으며, 지난 5월부터 집필진으로 추정되는 인사를 추적했다. 본지는 이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해명을 들었으며 이들의 논문과 발언을 분석했다.

국정화저지 단체가 지목한 9인 분석
고대사 2명, 신라 중심 역사관 비판
서양사 전공, 비주류 학자도 포함
“국정화 찬성파 포진, 우편향 우려”
일각선 “강성 뉴라이트 1~2명 불과”

지목된 9명은 전공별로 보면 고대사 2명, 중세(고려)사 2명, 근세(조선)사 1명, 근·현대사 2명, 서양사 2명이다. 교과서는 집필진이 자신의 전공에 맞는 부분을 각자 집필한 뒤 편찬심의위원이 검토 및 수정 요청을 한다.

교육부는 중국의 고대사 역사 왜곡(동북공정)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고대사 분량을 확대할 방침인데 명단에 오른 고대사 전공자는 모두 동북공정과 관련된 고조선·고구려 전문가다. 고대사를 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서모(67) D대 교수와 윤모(62) D대 교수는 모두 고조선과 고구려사를 연구하면서 신라 중심의 역사 교과서 집필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윤 교수는 2014년 발표한 논문에서 “(검정 교과서는) 현대사 분량이 과도하게 많다. 고대사는 현대사를 서술할 목적으로 개편된 검정 교과서 체제에 이용됐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검정 교과서 체제를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며 국정화를 긍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고려사를 전공한 박모(74) K대 명예교수도 고려가 고구려를 이어받은 국가라는 점을 강조해 온 학자다. 고려사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과 함께 4차(1982), 5차(1990) 국정교과서 개발에 참여한 적도 있다. 역사학계에서는 “김 위원장과의 개인적 인연 때문에 집필에 참여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근·현대사에는 1948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보는 보수 성향 학자들이 거론됐다. 현행 검정 교과서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정의하고 있는 48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꾸려는 교육부의 논리적 근거를 제공해 온 학자들이다. 허모(56) K대 교수는 2013년 논문에서 “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명시했다. 그는 48년을 “이승만이 주도한 유엔을 통한 건국”이라고 정의하면서 “정부로 승인받지 못한 임시정부에 비춰 볼 때 기적과도 같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뉴라이트 성향의 강모(52) M대 교수는 지난해 현행 검정 교과서를 분석한 논문에서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는 교과서의 서술은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 단체가 지목한 9명의 학자는 모두 집필진 또는 편찬심의위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명단에 이름이 오른 한 교수는 “현행 교과서에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집필진 참여 여부는 노코멘트하겠다”고 답했다. 다른 교수들도 답변을 피했다.

학계에서는 이들의 성향에 대해 우편향됐다는 반응이 나온다. 원로 학자 A씨는 “학계 ‘올드 보이’들을 포함시켜 후배 학자들이 공격하기 어렵게 해 놓은 것 같다. 뉴라이트 성향이거나 국정화에 찬성해 온 학자들”이라고 평했다.

서양사 전공이나 학계 비주류 학자들이 포함된 것도 이례적이다. 과거 국정 교과서 집필에 참여했던 한 원로 학자는 “교과서는 여럿이 나눠 쓰는데 보통 많은 부분을 교사들이 쓴 다음 교수들이 수정·윤문을 한다. 그런데 서양사 전공자들이 어떻게 국사 내용에 손을 댈 것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집필진 면면이 우려할 만큼 심각하지는 않다는 평가도 있다. 수도권 한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는 “학자마다 입장이 다르겠지만 고대·중세·근대별로 연구 업적이 탄탄한 교수들의 이름도 보인다”고 말했다. 검정 교과서 집필에 참여했던 한 교수는 “뉴라이트 성향이 강한 학자는 1~2명 정도로 보인다. 해방 이후 한국이 발전하는 과정이 강조되겠으나 형편없는 독재 미화 교과서는 아닐 것으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남윤서·전민희·노진호·백민경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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