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전교30등까진 공부만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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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일 서울대에 원서를 낸 A군(19)은 고3 1학기를마친 검정고시출신. 「막심· 고리키」나 「도스토예프스키」가 좋아 노어노문과를 소신지원했다.
학력고사성적 2백88점. 내신 1등급. 검정고시출신으로는 전국에서 3%이내에 드는 고득점자다. A군은 가출경력(?)이 있는 이른바 문제학생.
『학교에서는 문학도 하고싶었지만, 색서폰도 실컷 불어보고, 멋진 그림도 그리고 싶었어요.』 83년3월 A군이 입학한 서울강북의 이른바 사립신흥명문 C고교는, 이무렵 청소년의 파란 꿈을 펼칠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입학식이 끝나자 전교30등까지만 도서관에 자리를 정해주고 밤10시까지 공부만 하라고 강요했읍니다. 학교명예를 위한 대입준비가 시작된셈이었죠. 아침7시등교-자율학습1시간-8시간 수업-보충수업1시간-도서관 공부-귀가후 숙제의 연속이었읍니다.』 A군은 고입연합선발고사에서 1백93점을 받아 전교17등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톱니바퀴」에 끼었고 행동반경은 극도로 제한됐다. 『교실은 삭막한 시멘트벽이었고, 운동장이라고 덩그런 스탠드에 자갈밭이 전부였읍니다. 평준화이후 신설된 C고교는 배정 받은 상위권 학생들을 이처럼 달달볶아 이른바 명문대합격실적을 올려 신홍사립명문으로 불리는 학교죠.』 자갈밭운동장은 공한번튀기기 어렵고, 나무그늘 하나도 쉴곳이라고는 없는 그런 곳이었다.
『고교생이 되면 공부도 더재미있게 하고, 멋진 운동선수도, 미술·음악반활동도 모두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러나 학교는 그런곳이 아니었읍니다. 그런 여지는 어디에도 없었으니까요』 C고교에서의 A군의 하루하루는 처음부터 숨이 막히는 질식상태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다고 나만의 괴로움을 호소할만한 선생님도 없었고, 마음껏 떠들어댈 특별활동시간이나 상담실도 아예 없었읍니다. 오직 입시를 위한 공부가 잠시도 쉴 틈을 주지않는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어요』 A군이「학교탈출」을 한 것은 3학년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85년 10월초.
사실 A군의 학교탈출은 고1, 1학기가 끝날무렵부터 싹텄다. 학교의 강압적 분위기를 이기지 못한 그는 도서관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잦아졌다. 그대신 「씨 」 「밀물」 등 2개의 문학서클에 동시에 참가했다.
방과후 학교앞 중국음식점이 아지트였다. 숨막히는 도서관보다는 불편하지만 낙원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김동인의 소설에서「헤르만·헤세」의 작품까지, 고2가 되면서는 김지하·양성우의 시와 강만길·이영희교수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차츰 학교생활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읍니다. 이런 학교공부를 대학에까지 가서 한다는 것은 사치라는 생각도 들게 됐읍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아 집에서 떼를 써 매월 10만원을 타내 학교앞 독서실을 숙소로 정했다. 3학년 여름방학에는 가평의 외할머니 암자를 찾았다. 불편은 많았으나 마음은 그렇게 푸근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성적은 떨어졌고 중간고사에서는 일부러 시험을 망쳐 3백등까지 내려갔다. 문과 꼴찌였다. 담임 D교사(36)에게 처음으로 실컷 두들겨 맞고 탈출을 결심했다. 도서관에서도 이미 쫓겨나있었다. 『부모 몰래 집에서 8만원을 꺼내 무작정 청량리역으로 갔읍니다. 초가을의 삽상한 바람을 차창으로 받으며 어딘지도 모르게 한참을 가다가 내린곳이 안동역이었읍니다』 영주 부우사부근의 과수원을찾아 품팔이를 막 시작했을때 행방을 수소문해 찾아온 어머니에게 이끌려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어머니의 그때 표정은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하는것같은 그런 것이었읍니다. 지금은 개인회사 구내식당에서 생활비를 버는 어머니는 중졸(42)이면서도 내가 국민학교 3학년때까지 숙제를 매일 챙기고 가정교사 노릇을 단단히 하면서 늘1등을 하는 내게 엄청난 기대를 하고있었거든요』 어머니는 물론, 운전일읕 하고있는 아버지(45)도 A군이 서울대생이 되는것은 시간문제로만 생각하고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반장8번, 부반장1번을 지내며 전교석차는늘 1∼2등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가면 친구들과도 어울리면서 폭넓은 공부를 하고싶습니다』 학교가 싫어 가출까지 했던 A군은 대학생활에 새로운 기대를 걸고 있다. <권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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