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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압하면 민주화 활력만 더해준다" 「테드·컵」 WP지 북경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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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공대학생들의 불만은 아이로니컬하게도 현중공지도부의 성공을 말해주기도 하고 실패를 상징해주기도 한다.
대학생들이 데모를 일으키게 된 동기증의 일부분은 서구사상과 문물의 유입을 허용한 「개방정책」에 기인한다고 할수 있다. 개방정책은 또 수많은 중공인들이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오게 하기도 했다.
개인기업을 강조하고 문학과 예술에 있어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새로운 현상은 그것을 서구수준에 비추어볼때 매우 온건하지만 「부분은 전체에 우선할수없다」는 전통사상을 요구하는 사회의 구성원들에게는 새로운 충격을 던져주었다.
중공국내언론이 중공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보도할수 있다는 사실은 중공정부가 비판을 수용할수 있다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중공지도자들은 데모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입장이 난처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정부가 데모에 회유책을 쓰면 당내의 강경파들은 정부가 경제의 지방분권화·실용주의 사상교류및 서구자본주의 국가의 관광객과 실업가들을 유혹하기 위해 혁명을 배반하는 처사라고 비난한다.
중공정부는 아직 당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수파들을 멀리 할 수 없는 입장인데 보수파들은 현재의 데모를 정부결의의 시험대로 삼고 있다.
한편 정부의 강경 대처는 등소평등의 노력으로 피어나고 있는 표현의 자유의 꽃망울들 (제2의백화제방)을 꺾어버릴수도 있으며 이러한 조치가 일시적으로데모를 진압할수 있다하더라도외부세계에 좋지 못한 인상을주게 된다.
특히 자유중국과 중공에 반환될 홍콩이 중공의 상황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음을 중공지도부는 질 알고 있다.
중공정부는 현대화와는 동반자의 관계라고 주장하지만 민주주의의 정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학생들이 중공헌법이 규정하고 있는언론·출판·집회·결사·시위의 자유등을 실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일어난 학생데모가 상해에서 시작됐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불운한 감이 있다. 상해는 가장 서구화된 도시로 문혁이 구체화되는등 여러 분파들이 바글거리는 정치적 온상이 되어왔다.
대규모시위는 어떠한 형태든 중공인들에게 문혁 당시의 혼란과 파괴의 악몽을 되살려준다.
문혁당시에도 촉매 역할을 한것은 학생들이었는데 이들은 교사들을 고문하고 도서관을 파괴했으며 경로의 미덕을 비난했었다.
버지니아대학에서 중국사를 강의하고있는 「존·이스라엘」교수는 중공의 시위는 학생들이 주도하고 상해에서처럼 노동자들이 합세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라고밝히고 있다.
이처럼 학생과 노동자들이 연합하는 현상은 문혁초기와 같아 문혁을 경험한 40대이상은 이번데모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연합은 학생들의 의사와는 상반되는 작용을 하게 될것이다.
문혁10년의 영향은 중공의 국내정책결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문혁의 피해를 본 등소평은 1980년1월16일 당원들앞에서 『「방」과 자유로운 표현은 안정·단결과 충돌하며 우리는 후자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전자를 추구해서는 안된다』 고 말했다.
문혁의 결과, 많은 사람들은 평화와 생활의 안정을 유지할 환경을 원하게 되었다.
83년 서방의 영향이 오염되는것을 막으려는 정신오염추방운동을 제외하면 등의 연설과 민주의 벽사건이 발생한 이후 지난6년간은 대체로 조용했다.
이번 새로운 민주화 요구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중공이 문혁의 상처로부터 얼마나 회복되었는가를 시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 해결책이 어떤 것이건 직접적으로 해결되지 않는한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문제들은 다시 표면화돼 나타날것이다.
내가 하문대학에서 강의할 때한 학생이 손을 들고 일어서 등의 개혁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 학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감독관은 수업을 끝내라고 했다. 그 수업은 끝낼수 있었겠지만 교실에서 그 토론은 줄지 않고 계속됐다. 북경대에서 미국에서의 언론의 역할에 대해 강의 할때 한 학생은 중공기자들이 언제나 진실을 보도할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런 종류의 소요는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처음중공을 찾았을때 젊은이들이 모두 철저하게 이데올로기에 빠져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사려깊고 사고가 자유로왔다. 젊은이들은 10년전만해도 뜻도 모르고 암송했던 낡은 모택동식 구호를 비웃었고 중공체제의 약점들을 날카롭게 파악하고 있었다.
일부 청년들은 냉소적이었고 정부를 당황하게 하고 정부가 인민을 위하고 있지 못한 점들을 폭로하며 항의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청년들은 중공체제가 변화와 비판을 견딜수 있다고 믿고 있는것 같았다. 그들이 정부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악의가 아니라 조국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난 것이며 정부가 충분히 귀를 기울여준다는 신뢰감에 따른 것이다.
중공지도자들은 과감한 상상력과 그것을 기꺼이 실험하는 의지를 보여왔다. 상해식 학생데모는 이 두가지를 다 요구하고 있다. 만약 중공지도자들이 이러한 탄원들을 분쇄하기로 작정한다면 민주화 운동의 다음 단계에 활력만 더해줄 뿐이다.
그러나 그 요구에 귀를 기울이면 오늘 가장 귀찮은 존재인 젊은이들이 바로 내일 중공의 가장 큰 자원이요, 미래의 가장 홑륭한 희망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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