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긴급조정권 필요하면 발동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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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정부가 현대자동차의 장기 파업사태에 대해 긴급조정권 발동이란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긴급조정권이란 말 그대로 국민경제의 운영이나 국민 생활에 중대한 위험이 있을 때나 발동하는 비상 조처다. 문제는 현대차 파업이 이미 그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는 판단으로 한국의 간판기업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나 하는 우려가 크다.

현대차의 계속되는 파행을 보면 과연 이래도 회사가 잘 굴러가겠는가 하는 한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올해도 한 달 이상 잔업 거부와 부분.전면 파업이 되풀이되며 1조3천억원의 생산 차질과 해외 생산법인마저 조업을 멈추는 사태가 빚어졌다.

생산 차질이 모두 손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나 속으로 깊게 멍이 들고 있음은 틀림없다. 또 그 주름살은 협력업체에 더 깊게 밀려들 수밖에 없어 상당수가 조업 중단을 우려하며 부도 걱정에 오늘 내일 하는 하청 기업도 있다.

현대차는 1998년 이후 매년 노사분규를 거듭해 왔다. 노사 교섭기간이 길게는 5개월도 끌었고, 이중 네 차례는 노동법 개정 등 정치성 파업을 벌여 왔다. 현대차는 생산직 평균임금이 4천6백만원을 웃도는 고임금에 노조의 상근자만 90여명에 이른다.

이런 가운데 경영 측에선 수용하기 어려운 주5일 근무 도입과 경영권 참여를 외치며 민주노총을 뒤에 업고 재계와 싸움을 벌이니 거대기업 노조의 부정적 요소는 골고루 갖춘 셈이다.

현대차의 생산 차질 장기화가 가져올 대외 신인도 손상 등 후유증도 큰 걱정이다. 자동차처럼 세계 경쟁이 치열한 산업도 드물다. 미국의 포드사 등 이른바 빅3가 최근 5년간 노사분규가 없었고, 일본 도요타는 반세기 가까이 파업을 한 바가 없다. 노사가 합심해도 거친 경쟁의 파도를 헤쳐나가기 어려운 판에 우리의 주력 산업이 주저앉는다면 그 다음에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더 시간을 끌 것도 없이 현대차 노사는 협상을 끝내야 한다. 이제라도 한국의 간판기업 노조답게 파국적 상황을 넘기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도 안된다면 긴급조정권을 행사해 타율로라도 교훈을 가르치는 일만이 남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