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韓 과기부장관·中 칭화대 그룹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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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6면

중국 칭화대(淸華大)는 중국을 상징하는 이공계 대학이다. 중국을 움직이는 정치인들이 대부분 이곳 출신이며, 중국 기술의 본산으로 여겨지고 있을 정도다.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중국을 방문했을 때 이 대학에서 강연을 했다. 칭화대는 대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연 매출 1조7천억원의 칭화대기업그룹이다. 인재 양성과 기업 육성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본지는 칭화대기업그룹을 이끌고 있는 롱영린(榮泳霖.57)회장과 박호군(56)과기부 장관이 한.중협력 방안 등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편집자)

▶박호군 과기부 장관=상당수 중국 대학들은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칭화대는 그 규모나 질적인 면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대학이 기업을 경영하다보면 재정자립과 현장 교육에 크게 기여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순수 학문보다는 기업에 필요한 기능인력 양성에 대학교육의 무게가 실리는 폐단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롱영린 칭화대기업그룹 회장=칭화대가 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여러 가지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우수 인력 양성과 대학 재정 자립도 향상, 대학이 개발한 기술의 산업화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칭화대기업그룹은 학생들의 실습현장이자 개발한 기술을 산업화할 수 있는 창구이기도 하다. 칭화대가 교육을 담당한다면 칭화대기업그룹은 학생들을 정예화한다고 할 수 있다. 교내 기업 덕에 교수들 역시 자신들이 개발한 과학기술을 사장시키는 일이 거의 없다.

중국에는 과학기술이 대학과 연구소에 집중돼 있다. 한국의 기업처럼 중국 기업들이 자체 연구소를 가진 경우는 아주 드물다. 대학에서 기업을 함께 운영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다. 대학의 기업 운영은 국가 정책이기도 하다.

칭화대기업그룹에서 번 돈으로 칭화대 재정의 10%를 충당한다. 이는 학생 등록금의 두배에 해당한다. 또 대학의 교과과정이 기업과 맞지 않으면 수정을 요청한다.

▶朴장관=한국의 대학들도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이용해 벤처기업을 창업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공계 교수들 치고 벤처기업 한두개쯤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최근 몇년 동안 이런 정책 덕에 수많은 벤처기업이 탄생했다. 물론 이 같은 형태는 중국 대학들이 기업을 운영하는 형태와는 다르다. 그러나 기업 운영 주체가 누구든 간에 적절한 보상과 이익이 있어야 성공한다.

▶榮회장=그렇다. 칭화대에서는 논문 속의 과학기술보다는 산업화에 더 무게를 둔다. 교수를 뽑을 때 기술개발 성과를 주요 평가기준으로 삼고 있기도 하다. 교수나 학생들이 개발한 기술이 산업화되거나 창업을 했다면 주식 또는 돈으로 보상을 한다.

중국 내 다른 대학의 경우 대부분 특허와 기업 이익을 대학 소유로 하지만 칭화대는 개인 보상제를 실시하고 있다. 칭화대가 기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핵심 정책이다.

▶朴장관=한국이나 중국 모두 21세기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 낮은 수준의 공업기술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모든 산업은 지식화되는 쪽으로 발전하며, 독창적인 기술을 개발해야 살아 남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중.일이 힘을 합해야 한다. 지리적으로 볼 때 한국을 동북아 연구개발 중심지로 삼으면 동북아 3국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본다. 그런 의미에서 칭화대그룹 연구센터의 해외분소를 한국에 세우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榮회장=칭화대그룹의 해외 진출 전략에 따라 분소 설립을 검토해 보겠다. 우리 그룹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처럼 세계 시장을 휘어잡는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게 목표다. 중국의 경우 많은 첨단 제품을 개발하고 있지만 원천기술이 부족하다.

휴대전화의 경우만 해도 국산화율은 높지만 핵심 칩은 여전히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국가나 기업의 향후 경쟁력은 시장이 필요한 기술보다는 윈도처럼 시장을 이끌어가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서 나온다고 본다. 지금 당장은 생산기술 위주로 연구하고 있으나, 긴 안목으로는 중국도 독창적인 기술을 가져야 한다.

한국과 칭화대의 협력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한국기술벤처재단이 칭화대기업그룹의 국제관에 입주해 있으며, 우리는 한국관을 별도로 만들어 주고 있기도 하다. 중국이 첨단기술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과 긴밀하게 협조할 필요가 있다.

▶朴장관=원천기술의 확보는 한국이나 중국이나 시급한 과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진기업의 연구소를 유치하는 것도 중요한 전략이다. 한국 과학기술부는 한국을 동북아 연구개발 중심지로 만들고, 첨단 기술도 확보하기 위해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 분소 등 유수의 연구소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榮회장=칭화대기업그룹에만 50여개 다국적기업의 연구소가 입주해 있다. 중국이 큰 시장인 만큼 자사 제품의 현지화가 목적인 경우가 많다. 다국적 기업의 연구소를 유치하려면 그만큼 혜택을 줘야 하다.

칭화대그룹의 경우 우수한 인력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는 데다, 중국 정부가 외국 기업 연구소에 세금과 연구소 공간 등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등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

▶朴장관=노무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한.중 과학기술교류도 강조했다. 그 후속 조치로 '한.중 과학기술교류협력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10대 경협사업의 하나로 생명공학.신소재 등 첨단기술 분야의 공동연구 등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榮회장=노무현 대통령의 칭화대 연설과 토론은 새 바람을 일으켰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등 외국 원수들이 많이 다녀갔지만 대부분 형식적이었다.

그러나 盧대통령은 격의없는 대화와 토론을 함으로써 칭화대생 등 중국 젊은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이후 칭화대에서는 교수와 학생, 총장과 교수 등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토론이 유행하고 있을 정도다. 나도 盧대통령의 강연을 들었는데 한.중 과학기술 교류에 대한 희망을 부풀게 했다.

▶朴장관=중국은 이공계 출신이 이끌고 있다. 정부 고위 관료들뿐 아니라 대학 총장들도 대부분 이공계 출신이다.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 탓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부럽기까지 하다.

▶榮회장=이공계 출신의 득세는 역사적 산물이다. 문화혁명 이후 생산에 필요한 기술 수요가 많았기 대문이다. 앞으로 다양한 분야의 출신들이 고위 공직 등에 진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진행.정리=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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