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구시보 "한국사회는 최순실 사태 덮고 넘어갈 수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기사 이미지

베이징 신경보 최순실 보도 [사진 신경보 캡처]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가 28일 최순실 국정개입 사건에 대해 “최근 2년간 한국의 충동적이고 감정적 경향의 외교정책이 최순실 영향이 아닌가”라며 의문을 표시했다. 중국은 북한 핵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나라다. 그런 중국의 언론이 한국의 외교정책에 의문을 표시하면서 한국의 외교적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베이징 신경보 등 중국 매체들도 28일 관영 신화사를 인용해 박근혜 대통령의 ‘구이미(베프·閨密·친한 여자친구)’ 최순실 스캔들을 본격적으로 보도했다.

환구시보는 이날 ‘박근혜의 마음 속 그림자가 한국에도 드리웠나’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박 대통령이 사면초가에 처했으며 낭떠러지에 섰다”고 진단했다. 박 대통령과 최태민의 관계에 대해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은 목사였으며 이전에 승려였다”며 “박근혜 모친이 암살당한 뒤 박근혜와 접촉을 시작했고, 부모를 모두 잃은 뒤 최태민이 박근혜의 정신적인 스승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근혜보다 네 살 어린 최순실은 이 때부터 박의 ‘구이미’가 됐다”며 “박근혜는 평생 미혼에 자녀도 없어 고통과 긴 고독 속에서 최씨 부녀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했다”고 했다.

기사 이미지

환구시보 박근혜 대통령 보도 부분

사설은 “개인의 일생이 이처럼 불행한 여인이 일처리 방식에서 개성이 지나친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녀가 한국 대통령이 됐다는데 문제가 있다”고 평가했다. “친구 사이의 정(情)으로 국가 최고 기밀을 유출했다면 이는 한국의 대통령 제도를 위반한 것”이라며 “현재 한국 사회를 보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 그의 딸이 부모의 피살로 받았을 정신적 충격에 대한 동정이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압도할 수도 있다”고 했다. 최순실 사건이 묻힐 수 있는 가능성도 염두한 것으로 해석된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승마특기생 입학, 미르·K스포츠재단과 최순실의 이익관계를 언급하면서 “어떤 이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비밀 유출’ 죄 외에 ‘부패’ 꼬리표도 덧붙인다”고 적었다.

한국 국민의 여론 악화도 지적했다.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최신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지지율이 20% 밑으로 추락했다”며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미 일부 정치인과 여론에서 터져나왔다”고 했다.

한국 정치의 취약점도 강조했다. 사설은 “현대 정치제도의 설계 취지 중 하나는 인성의 약점을 억제하는 데 있지만 한국 정치는 커다란 허점을 드러냈다”며 “한국 유권자가 (박 대통령의) 성격상 약점까지 생각하지 못했고, 한국의 감독 시스템이 박대통령 임기 동안 작동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아직도 최순실이 박근혜 정권에 개입한 수준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다”며 우려했다. 한국 언론이 폭로한 내용과 박근혜·최순실 둘이 인정한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사설은 힐러리 클린턴 미국 대통령 후보의 ‘이메일 게이트’보다도 더 엄중하다고 비교했다. “힐러리는 경험이 풍부한 정객이지만 위기 처리과정에서 ‘불성실’하다는 인상을 심었다”면서 “박근혜의 잘못은 그보다 더 엄중하지만 그에 대한 동정도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이어 “부모 모두 피살당했으며 본인도 대통령 임기 중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면서 “이 정치 가족의 전후 불행은 희미한 운명선으로 연결돼 있다”고 평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