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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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스틸레토는 단검이라는 뜻이다. 미국 스탠퍼드 대 「월리엄·밀러」교수는 최근 「스틸레토 마키트」라는 새 용어를 만들어 냈다. 단검을 파는 시장이라는 뜻이 아니다.
지금 세계경제는 큰 변화의 시대를 맞고 있다. 그 주조는 시장의 변화.
이제까지 산업혁명의 특징으로 나타난 대량생산은 지구 규모의 대량시장을 유지해 왔다. 똑같은 모양의 상품을 대량으로 만들어 싼값으로 공급, 대량소비가 가능했다.
1960년대의 로마 클럽은 대량생산에 의한 성장의 한계를 경고했었다. 특히 천연자원, 농업, 에너지에서 한계에 직면한다는 예언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농업기술과 종자 육성기술이 진전되면서 농업은 더욱더 발달할 수 없었다. 자원이나 에너지도 가령 자동차의 소형화나 모든 제품의 경박단소화로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새로운 세계경제의 등식이 성립된다.
「밀러」교수는 그것을 「푸시」(밀어내는 힘)와「풀」(끌어들이는 힘)의 이론으로 설명한다.
우선 공급측면에선 신기술에 의해 새로운 상품을 밀어내고(푸시), 수요의 측면에선 사회변화와 가치관의 변화로 신기술을 재빨리 시장으로 끌어들인다 (풀) .
이런 시대의 사람들은 「내부지향형」의 인간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대량 생산이 지배하는 산업시대에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유행을 뒤쫓는 등 외부지향형의 인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물량주의에서 벗어나 자기의 체험을 존중하는 경험주의로, 양에서 질로, 획일성에서 다양성으로, 중앙집중에서 지방분산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조직면에선 상의하달의 하이어라키(계급제도)에서 각자가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는 단위조직으로 전환하고 있다.
「밀러」교수는 이런 변화를 르네상스 초기에 볼 수 있었던 가치관의 변화와 견주었다.
르네상스기의 특징은 「루이스·멈퍼드」(미국 문명비평가)가 지적한 「중세의 7대죄」로 설명할 수 있다. 탐욕, 질투, 폭음 폭식, 색욕, 과시(과시), 분노, 게으름-이 가운데 게으름을 뺀 6개의 특징이 덕목이 되어 산업혁명을 몰고 왔다는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의 극치를 보여준 것은 「헨리·포드」였다. 그는 T형의 검은 자동차를 홍수처럼 쏟아냈다. 그러나 검은 자동차는 이제 소비자들의 기호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자동차색깔 하나를 놓고 보아도 마키트 세그멘테이션(시장 세분화)이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마키트 세그멘테이션(시장 단편화)이 촉진되고 있다.
작은 칼(단검)로 물건을 자르듯 상품시장은 규모보다 개성을 추구하고 다양해져가고 있다. 「스틸레토 마키트」가 그것이다. 「밀러」교수는 그런 현상을 「선택의 경제」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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