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성난 민심을 직시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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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박근혜 대통령이 고립무원이다. 60대 이상과 대구·경북(TK)까지 등을 돌리면서 지지율이 임기 중 최저(17.5%)로 가라앉았다. ‘최순실 문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한 다음날 나온 수치라 충격이 더하다. 대통령의 사과를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배신감만 커졌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릴 국정농단 사례가 앞으로 얼마나 더 터져 나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미 대학가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27일 부산에선 박 대통령이 참석한 박람회 행사장에 대학생들이 ‘대통령 하야’ 플래카드를 들고 기습시위를 벌였다. 박 대통령 면전에서 ‘하야’ 구호가 나온 건 처음이다. 교수들도 가세했다. 성균관대 교수 32명, 경북대 교수 50명은 27일 시국선언문을 내고 중립내각 구성과 대통령 하야를 요구했다.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릴 ‘민중 총궐기’ 집회에서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벌여온 국기 문란에 대한 성토는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런 성난 민심을 직시해야 한다. 왜 학업에 전념해야 할 학생들이 시위에 나서고 지성의 상징인 교수들이 독재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시국선언을 재개했겠는가. ‘최순실’ 때문만이 아니다. 박 대통령의 국민을 무시하고 정상적인 국정운영 시스템을 무력화시킨 비민주적 행태, 오만·불통·일방주의에 참다 못해 폭발한 분노의 결과다.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정농단’의 진상을 고백하고 비서진을 통째로 물갈이해도 가라앉을지는 미지수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90초 사과’ 이후 사흘째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를 틈타 우병우·안종범·정호성 등 책임자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뻔뻔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무책임한 사퇴는 심각한 국정공백을 가져올 것”이란 주장이지만 국민들의 눈에는 수사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자리를 보전하려는 꼼수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이미 청와대의 국정 리더십은 완전히 사라졌다. 박 대통령은 더 늦기 전에 성역 없는 진상규명과 인적 쇄신에 협조하는 게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