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보수장이 '비핵화'아닌 '핵 제한'을 들고 나온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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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보기관의 수장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으며, 따라서 현실적으로 (북한의) 핵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해 파문이 커지고 있다.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25일(현지시간) 미 외교협회(CFR)주최 세미나에서 "북한을 비핵화하겠다는 생각은 아마도 '가능성이 없는 것'(lost cause)"이라며 "핵무기는 그들의 생존 티켓'이며 아마도 우리(미국)가 희망을 걸 수 있는 최선의 것은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한) 일종의 제한(some sort of a cap)"이라고 말했다.

클래퍼 국장의 발언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고 더 이상 핵 능력을 확장하지 못하도록 현재 수준의 '핵 동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는 북한의 핵 보유를 절대 인정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한·미 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과 배치되는 것이다.

2005년 설치된 DNI는 중앙정보국(CIA)·연방수사국(FBI) 등 16개 정보기관으로 이뤄진 미 정보협의체(IC)의 정점으로, 정보에 관한 모든 실권을 갖고 있다. DNI국장은 IC의장을 겸직한다.

클래퍼 국장은 2014년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인 기자 2명의 석방을 위해 방북했던 것을 거론, "내가 북한에 가 봐서 북한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좀 안다"며 "그들(북한)은 포위돼 있으며 피해망상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따라서 그들이 핵 능력을 포기한다는 것은 애당초 가능성이 없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클래퍼 국장은 "북한은 (미국의 '핵 제한(동결)' 제안도) 우리가 요구한다고 해서 순순히 받지는 않을 것"이라며 "어떤 중대한 유인책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과 관련, "솔직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특히 이동식 ICBM인 KN-08의 경우 시험을 해보지 않아 제대로 작동하는지 안 하는지 그들도, 우리도 잘 모른다"며 "하지만 우리는 북한이 알래스카와 하와이를 비롯해 잠재적으로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발사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북 선제 타격론에 대해선 "옵션(선택지)의 하나이긴 하지만 만약 군사적 옵션이 시행된다면 그 과정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칠텐데, 아직은 운 좋게도 이(군사적 옵션)는 정보 당국에서 내린 결정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클래퍼 국장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자 존 커비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클래퍼 국장의 발언은) 우리 정부의 입장이 아니다"라며 "미국의 대북 정책은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일축했다.

외교가에선 이날 클래퍼 국장이 "북한과는 (이란식 핵동결 협상도) 실현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말도 한 점으로 미뤄 새 정권의 출범에 맞춰 비핵화와 핵 동결 사이의 새로운 형태의 '핵 능력 제한'을 모색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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