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혼자가 좋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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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수지」야, 학교가자.』
『「미미」야, 조금만 기다려.』
3평 남짓한 방안에서 양문정어린이(10·리라국교3년)는 「미미」와 「수지」를 번갈아 손에 쥐고 학교놀이를 하고 있다. 「미미」와 「수지」는 작년 크리스머스 선물로 아빠가 사주신 인형. 눈도 깜박이고, 팔·다리도 움직이고, 옷도 갈아입힐수 있지만 불행하게도 말을 못한다.
그래서 윤정이는 「미미」도 되고 「수지」도 되며 혼자 놀이를 할 수밖에 없다. 『미미와 수지는 정말 예쁜 제친구예요. 그래서 동생(8)이 함께 놀자고 해도 빌려주기 싫어요.』 윤정이는 커다란 털곰인형이 하나있어 비록 가짜지만 심심할때 둘이서 비밀얘기를 나눌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정진옥어린이(13·광희국교6년)가 요즘 열렬히 희망하고 있는 것이 하나있다.
내 방을 갖는 것이다. 큰언니(17)·작은 언니(15)와 함께 방을 쓰고있는 진옥은 「언니가 힘이 세니까」 대장인 큰언니가 해놓은 것은 건드리지 못하는게 불만이다.
『내 방이 있어 마음대로 예쁜 아기 사진도 붙여두고 오색 스탠드도 갖다놓고 해서 예쁘게 치장할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큰언니책상에 장식된 수많은 강아지 사진과 침대 벽면에 붙여놓은 보컬그룹 「아하」의 사진을 쳐다보며 부러운 듯 하는 말이다.
『우리집 아이(중2)는 항상 FM라디오를 틀어놓고 살아요. 시험공부를 할 때도 라디오 소리가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정신이 산란해져서 무슨 공부가 되겠느냐고 라디오를 꺼버리면 「무식한 엄마」라고 핀잔을 줘요.』 김혜선씨(40·서울강남구방배동)는 「자기만의 세계」를 고집하는 아이때문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하소연(?)한다.
「나」를 중시하는 요즘 세대(Me Generation)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이들 현상은 사람이 밀폐된 공부상자까지 탄생시킬 정도가 됐다. 그래서 일부 극단적인 어린이들은 친구와 함께 어울려 놀기보다는 각자 집에서 혼자 노는 시간을 갖는 것을 더욱 편안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반장선거에 당선된 아이가 초대를 한다거나, 생일파티를 여는 때가 아니면 좀처럼 많은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기회는 없어요.』 혼자 있을때는 주로 동화책을 읽거나 제기차기로 시간을 보낸다는 김선경어린이(11·광희국교4년)는 『친구들과 같이 놀고 싶어도 남의 집에 가면 마음껏 시끄럽게 떠들지 못하니까 재미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가하면 학교에서도 함께 놀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것. 박혜숙어린이(10·리라국교3년)는 『시험을 자주 보기 때문에 쉬는 시간도 화장실에 다녀올 정도로 짧은 것이 대부분』이라면서 『그래서 놀 시간도 없고 기껏해야 2∼3명이 모이는게 고작』이라고 들려준다.
김규교수(서강대·신문방송학)는 『이같이 「나만의 세계」를 선호하는 것은 새로운 세대들의 공통적 특성』이라고 말하고 『이들은 따라서 「밀실적 분위기」나 「제5의 벽」을 필요로 한다』고 진단한다. 예컨대 이어폰을 꽂고 음악에 심취하는 것은 외부의 간섭을 소리로써 차단하고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을 듣게 함으로써 밀실과 같은 자기세계를 만들려는 한 표현이라는 것. TV를 켜놓거나 라디오를 듣는 것도 소음을 통해 제5의 벽으로 자신을 방치하고자하는 욕구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언니가 중학생이 되더니 독방을 달라고 해서 서로 딴방을 쓰게 됐어요. 한방에 여러 사람이 있으면 말하고 싶고 공부가 안된대요. 그래도 저는 언니랑 함께 방을 쓸 때가 더 좋았던것 같아요.』 전선혜어린이(10·리라국교3년)의 말은 「나만의 세계」에 긴여음을 남겨 준다. <홍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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