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덴 연설문 파일 30곳 빨간글씨, 연설 땐 20곳 달라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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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씨 소유의 PC에서 발견된 200여 개의 문서 파일 중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및 공식 발언과 관련된 파일 44개가 포함돼 있었다고 JTBC가 24일 보도했다.

2014년 박 대통령 ‘통일대박’ 연설
박정희 고속도로 에피소드 추가되고
원래 있던 북핵 관련 문장은 빠져

이들 파일 내용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박 대통령의 2014년 3월 28일 드레스덴 연설문이다. 당시 독일 순방 중 드레스덴공대의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에서 연설을 할 때 사용된 원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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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차 수석비서관회의 자료(①)에‘※통과해야 할 법안들은 다음 페이지에’라고 쓰여 있다. 최씨가 받은 파일은 작성이 완료되지 않은 초안으로 보인다. 최씨의 파일 중엔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공대 연설문(②)도 있었다. 붉은 글씨로 표시된 부분이 30여 곳이며 이 중 20여 곳이 실제 연설에서 달라졌다. [자료 제공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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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대박론을 제안했던 박 대통령은 이 연설에서 통일대박의 방법론을 제시했다. 여기엔 “한국의 자본·기술과 북한의 자원·노동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것을 의미하며, 장차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핵을 버리는 결단을 한다면, 이에 상응해 북한에 필요한 국제금융기구 가입 및 국제 투자 유치를 우리가 나서서 적극 지원하겠다” 등의 발언이 담겼다. 연설 이후 박 대통령의 제안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공식 지지를 받는 등 국내외의 반향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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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는 “최씨는 이 연설문을 박 대통령이 연설하기 하루 전날 받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작성자가 연설문을 최종 수정한 지 채 1시간이 지나기 전에 연설문을 받아 열어 봤다는 것이다”고 보도했다. 모두 13쪽 분량의 원고 곳곳에서 30여 곳에 붉은색 글씨가 발견됐다고도 했다.

JTBC는 “붉은 글씨로 돼 있는 문단은 들어내도 문맥이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돼 있는 20여 곳은 박 대통령의 실제 연설 당시 내용이 달라졌다. “실제 연설문에는 최씨가 받아 본 연설문에 없던 박정희 대통령 재임 당시 고속도로 건설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추가됐다”고 JTBC 는 덧붙였다. ‘다닐 차도 없는데, 무슨 고속도로냐’는 반대를 무릅쓰고 박 전 대통령이 고속도로를 건설했다는 내용이다. ‘단순히 일회성 지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북한 핵 개발 추진 시 본격적인 외자 유치는 불가능하다’ 등의 문장은 실제 연설에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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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의 파일에는 2012년 12월 31일 오후에 공개된 박 대통령의 첫 신년사와 2013년 5월 18일 오전 10시에 있었던 33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사도 들어 있었다고 JTBC는 전했다. 2013년 신년사는 문서가 마지막 수정된 지 4분 만에, 5·18 기념사는 1시간 반 뒤에 최씨에게 건네졌다고 한다. 모두 공개 하루 전이었다. JTBC는 “최씨가 수정했다고 단정하거나 할 수는 없을 테지만 청와대 연설문 상당수가 최씨에게 사전에, 그것도 대체로 완성된 형태의 파일이 작성 직후에 전달됐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이 파일들 중에는 연설문뿐만 아니라 국무회의 발언 자료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지 2년이 지났습니다. 국민 모두가 지혜와 힘을 모아서 성공적인 대회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는 제32회 국무회의(2013년 7월 23일 오전 10시) 모두발언도 그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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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는 “최씨는 회의 시작 약 2시간 전인 같은 날 오전 8시12분에 이 문서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 국무회의 하루 뒤 진행된 당선 후 첫 지방자치 업무보고 석상의 모두발언도 그중 하나였다. “새 정부의 첫 지방 업무보고를 강원도에서 갖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고 시작하는 원고였다. 최씨는 이 모두발언 원고 역시 하루 전날인 23일 오전 10시17분 받아 봤다고 JTBC는 밝혔다. 파일명은 ‘강원도 업무보고’였다.

특별취재팀 임장혁·문희철·채윤경·정아람·정진우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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