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공연예술의 새 지평을 열다|호암갤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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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호암갤러리가 문을 연 것은 84년9월22일. 중앙일보 새 사옥에 4백여 평의 넓고 아늑한 전시공간을 마련, 최신시설을 갖춰 전시장이 태부족한 한국미술계에 이바지해왔다.
호암갤러리는 유리공예의 황무지 한국에 환상의 꿈을 글라스에 새긴 「아르누보 유리명품 전」으로 개관 첫 테이프를 끊었다.
아르누보는 프랑스에서 1870년대부터 싹트기 시작, 19세기말 최고조에 달했던 서정성이 짙은 조형표현운동.
새로운 소재에 의한 새로운 표현을 모토로 한 이 운동은 유리공예가 꽃피웠다.
이 「아르누보 명품 전」으로 한국에도 유리공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발아, 올 9월1일부터 10월30일까지 연 「프랑스 우리예술 100년 전」으로 이어졌다.
이 두 차례의 유리공예 전으로 한국공예계에도 새바람이 일어 작가들이 유리작품을 제작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84년 12월에 연 「독일현대 미술전」은 우리 나라 현대미술운동에 박차를 가했다.
오늘날 세계를 움직이는 현대미술은 미국과 독일.
미국의 현대미술 경향은 어느 정도 알 수 있었지만 독일은 그렇지 못했다.
문예진흥원 미술회관과 호암갤러리에서 연 두 개의 「독일현대미술전」으로 유럽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뭐니뭐니 해도 85년10월에 연 「피카소 걸작 전」은 미술애호가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준 전시회였다.
그때까지 우리 나라에 들여온 「피카소」작품들은 흔히 대할 수 있었던 평작임에 비해 호암갤러리에서 연 「피카소 걸작 전」에 내놓은 작품들은 맏딸 「마야」가 비장한 미 공개 걸작품들이어서 감상자들이 안복을 누리는데 충분했다는 평을 들었다. 관객도 많아 하루평균 1천명이상이 보았다.
미술평론가 이일씨(홍익대 교수)는 『「피카소 걸작 전」은 청색시대부터 만년까지 변혁을 조감, 「피카소」그림의 정체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처음 전시된 작품들이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평했다.
85년 5월에 연 「부르델 조각 전」도 큰 수확을 거두었다. 「로댕」 「마욜」과 함께 3대 조각가로 꼽히는 「부르델」의 작품이 우리 나라에 첫선을 보였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활을 당기는 헤라클레스』 등 힘과 리듬을 구사한 활력 넘치는 조각 49점과 데생 스케치작품구점을 함께 전시, 공간예술의 새로운 개척자 「부르델」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올6월에 연 「이중섭 전」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개최했던 어떤 이중섭 전보다 규모도 크고 내용도 충실했다는 평을 들었다.
관객도 많아 하루 평균 3천여 명이 이중섭 작품 앞에서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호암갤러리에서 연 「이중섭 전」으로 이중섭이 천재화가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작품을 재조명, 문인들에 의해 신화적 존재로 꾸며졌다는 이야기도 불식시켰다.
국내작가로도 남 관·박래현·박생광 전을 열어 호평을 받았다.
「한국양화70년 전」(85년8월)으로 우리 나라에 서양화가 도입, 현대까지 한국회화 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작가 80명의 작품을 선보였다.
「한국현대판화 어제와 오늘 전」(85년11월)도 작고·원로·현역판화가 40명의 작품1백 점을 내놓아 판화의 정체와 가치를 재인식하고 내일을 향한 창작의욕을 돋우었다.
미술평론가 이경성씨 (국립현대미술관장)는 『「한국현대판화 어제와 오늘 전」은 우리 판화예술의 국제화 길을 제시한 이정표가 되었다』고 평했다.
올 4월에 연 「한국화100년 전」도 근대 동양화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뜻깊은 기획전이었다.
당대의 작가 85명의 작품 94점을 내놓아 우리 전통화단의 변모를 알아보고 우리의 정서와 뿌리깊은 민족정신이 어떻게 화폭에 담겼는가를 진단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한국최초의 「만다나대전」(85년3월)을 연 것도 획기적인 일이다.
티베트벽화·한국불화 1백20점을 전시, 불교미술의 뿌리를 찾아보았다.
85년12월에 연 「도자기 명품 전」은 우리조상의 숨결이 담긴 도자기 예술품과 일반의 거리를 좁힌 전시회였다.
호암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보물·명품 등 2백여 점을 전시했다.
겨울철에 시민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호암갤러리에 해설 붙인 진귀 품을 내놓아 고담청아한 한국미의 경지와 우리선인들의 뛰어난 장인정신을 살펴보는 뜻깊은 기회가 되었다. <이규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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