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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와 9홀 라운드, 8000원이면 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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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굿샷! 잘했어요.” 지난 15일 울산 남구 파크골프장에서 열린 2016 어르신 가족사랑 파크골프 대회. 강원도 양양에서 온 엄정희(77)씨가 클럽으로 공을 굴려 홀에 집어넣자 옆에 있던 남편 전상천(78)씨는 주먹을 불끈 쥐며 이렇게 외쳤다. 엄씨도 환하게 웃으면서 남편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도심 속 공원서 즐기는 파크골프
일반 골프장 면적 50분의 1 크기
600g 나무 클럽 1개로 경기 진행
전국 120곳 조성, 무료 이용도 많아
체력·비용 부담 적어 은퇴자 몰려
93세 어르신 “18홀 기준 70타 거뜬”

부부팀으로 이번 대회에 참가한 둘은 평소 파크골프로 건강 관리를 하고 있다. 전씨는 “건설업에 종사하면서 골프를 자주 쳤다. 은퇴 후에는 수입이 줄어들어 골프 라운드 비용이 부담스러웠는데 저렴한 파크골프를 알게 돼 부부가 함께 재미있게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공원(park)과 골프(golf)를 합친 단어인 파크골프는 1983년 일본 북해도에서 시작됐다. 한국에는 2003년 서울 여의도 63빌딩 앞 한강공원에 9홀 코스가 조성되면서 보급됐다. 파크골프는 골프와 경기 방법이 같다. 18개 홀에 걸쳐 타수가 가장 적은 사람이 승리한다. 18홀 기준 타수는 66타다. 다른 점은 골프장 크기다. 파크골프장은 일반 골프장(약 83만㎡) 면적의 50분의1(최소 1만5000㎡) 수준이다. 파3·파4·파5로 구성돼 있는 홀의 길이도 40~150m로 길지 않다. 홀 지름은 20cm. 도심 공원에 코스가 조성돼 접근성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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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파크골프협회에 등록된 국내 파크골프 동호인은 1만7824명(2015년 기준)이다. 등록하지 않은 파크골프 인구를 더하면 대략 6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대부분 50세 이상의 장년·노년층이다. 골프를 즐기다가 은퇴 후 파크골프에 입문한 사람이 많다.

골프는 클럽이 13~15개 정도 필요하다. 그린피와 캐디피도 비싼 편이다. 반면 파크골프는 나무로 만든 클럽 1개(약 20만원)만 있으면 된다. 플라스틱 재질인 공(무게 80~95g)은 1만~3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 지난 2010년부터 파크골프를 즐기고 있는 93세 나정락씨는 “클럽이 가벼워서 쉽게 칠 수 있다. 예전엔 18홀을 60타를 기록했는데 요즘엔 70타 정도 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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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17개 시·도에 120개 파크골프장이 있다. 지자체와 대한체육회가 지원·관리하는 덕분에 이용료가 소액(9홀·1인당 4000원)이거나 무료다. 2014년 개장한 서울 잠실 파크골프장 이용객은 월 5000여명 수준이다. 서울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 차선동 주무관은 “65세 이상 인구가 지난해 약 680만 명으로 늘어나면서 동호인도 많아졌다. 개장 첫해 한 달 이용객이 2000명 정도였지만 3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었다. 은퇴한 60~70대가 80%를 차지한다”고 전했다.

여성 노인들의 참여도 많아지고 있다. 엄정희씨는 “손목·무릎 등 관절이 성치 않지만 파크골프는 큰 힘을 쓰지 않고도 즐길 수 있다”며 “나이가 들수록 걷는 운동이 중요하다. 파크골프를 하면 하루 1~2시간 정도 자연스럽게 걷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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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 즐길 수 있는 파크골프가 실버 세대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어린이도 쉽게 배울 수 있어 3대가 함께 즐길 수 있다. 지난 15일 울산 전국대회에서 아버지 김태훈(왼쪽)씨와 할아버지 김성국(오른쪽)씨가 손자 김동건군이 퍼트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울산=송봉근 기자]

최근에는 10~20대도 파크골프에 흥미를 보이고 있다. 올해로 3회를 맞이한 어르신 가족사랑 파크골프 대회에는 총 312명이 부부팀(149팀)과 3세대팀(5팀)으로 나뉘어 출전했다. 3세대팀에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여럿 보였다. 최연소 참가자인 김동건(7)군은 할아버지 김성국(68)씨, 아버지 김태훈(39)씨와 함께 파크골프를 즐긴다. 김태훈씨는 “5년 전 아버지가 파크골프를 시작한 후 나도 함께 쳤다. 그걸 본 아들 동건이도 함께 참여해 ‘3세대 스포츠’가 됐다”고 말했다.

김동건군은 “티샷을 할 때 가장 재미있다. 빨리 할아버지만큼 잘 치고 싶다”며 웃었다. 파크골프에 푹 빠진 김군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방과 후 수업 시간에 골프를 배우고 있다. 할아버지 김성국씨는 “요즘 세대 간의 불통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데 파크골프를 통해 어린 손자와 대화 시간이 늘었다”며 흐뭇해 했다. 김성국씨 3대 가족은 이번 대회에서 우승했다.

젊은 세대까지 흡수한 파크골프는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대한파크골프협회 박훈 사무처장은 “국내 파크골프 인구가 곧 10만 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기존 골프장에 파크골프장을 조성해 전국적으로 파크골프장을 늘릴 계획”이라며 “동호인이 150만 명을 넘는 일본과도 국제대회를 통해 활발하게 교류할 예정”이라고 했다.

울산=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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