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꼴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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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꼴찌에게 메달을!』
지난 6일 뉴욕시의 센트럴 파크(공원)에 모여 있던 수 백명의 시민들은 함성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마라톤 사상 가장 느린 주자에게 보내는 격려였다. 어떤 시민은 너무 감격해 눈물을 홀리기도 했다.
98시간48분17초. 뉴욕 시티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한 선수의 기록이었다. 1만9천4백13등. 물론 그보다 뒤떨어진 선수는 없었다. 1시간에 1·6km씩 뛴 셈이다.
가장 느리게 뛰어 마라톤의 영웅이 된 주인공은 40세의 「봅·월랜드」. 그는 17년 전 월남전에 위생병으로 참전했다가 박격포탄을 맞고 두 다리를 잃었다.
지금 캘리포니아주 패사디나시에서 체육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것도 놀라운데, 그는 두 팔로 뒨 최초의 마라톤 챔피언까지 되었다.
두 팔로 뛰는 자세는 목다리 모양으로 두 팔은 땅을 짚고 몸은 앉은 채로 그네처럼 앞으로 밀어내는 식이다. 그의 몸을 실은 안장의 무게만해도 6·7km이었고, 헝겊으로 감싼 두 주먹이 발의 구실을 했다.
그는 다른 선수들보다 2시간이나 앞서 출발했지만 경쟁이 될 턱이 없다. 매시간 휴식. 밤에는 추위와 피로에 지쳐 잠깐씩 눈을 붙여야했다.
새벽에 일어나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미 마라톤 경기는 끝나 「윌랜드」가 도착할 종점에는 골인 테이프도 없었다. 그러나 「윌랜드」는 뛰었다.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에선 격려의 고함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마라톤 대회 본부는 「월랜드」의 지칠 줄 모르는 집념에 감동해 경기가 이미 끝난 지 4일 뒤 골인 지점에 다시 테이프를 걸었다. 1백 시간 가까운 주파 골에 드디어 골인.
『성공은 출발에 있지 않고 끝나는 곳에 있다. 나는 그것을 해냈다』
「윌랜드」는 두 팔을 하늘로 치켜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야말로 꼴찌의 위대한 승리였다.
이 얘기는 일요일자 헤럴드 트리뷴지에 난 기사다. 『마라톤엔 꼴지, 용기엔 1등』, 그 표제가 인상적이다.
『승리보다 더 자랑스런 패배가 있다』는「몽테뉴」의 얘기가 실감난다.
팔, 다리가 건장한 사람들이여!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이여! 마음이 약한 그대들이여!
「윌랜드」의 휴먼 드라머에서 생각하는바가 없는가. 취직이 어렵다고 몸에 불을 지르고, 또는 목숨을 끊는 일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똑같은 생명과 똑같은 용기를 갖고 태어난 젊은이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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