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노트7 그냥 쓰겠다”는 마니아들…삼성, 어찌할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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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8월 중순 예약 주문으로 갤럭시노트7을 구매한 직장인 박모(43)씨. 9월 초 발표된 1차 리콜 사태 때도 교환을 받지 않은 그는 단종 발표 이후에도 확고하게 “교환받을 생각이 없다”고 주변에 밝힌다. 우선 시간이 없다. 예약 구매자들은 먼저 전화로 교환 신청을 접수하고, 상담원이 알려주는 지정 대리점을 찾거나 우체국 택배로 제품을 보내야 한다. 박씨는 “안내문은 읽기만 해도 복잡하고, 회사 일이 너무 바빠 이런 데 마음 쏟을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노트7의 기능이 모두 마음에 드는 터라 다른 휴대폰으로 바꾸고 싶지도 않다. 그는 “내년 초까지 기다려 갤럭시S8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 노트7의 대화면이며 카메라 기능이 모두 만족스러운데 더 사양이 낮은 스마트폰으로 갈아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만한 기기 없다” 사용자들 많아
나흘간 교환·환불 10%에 못미처
내년부턴 소비자 손해 점점 커져
외국 공항선 벌금…수리도 불가능

9월 중순 리콜 사태로 한 차례 노트7을 교체한 김모(48)씨도 “이번엔 교환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번 교환도 꼬박 한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는 “심리적으로 다시 대리점을 찾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또 쓸수록 이만한 폰이 없는 거 같아 바꾸고 싶지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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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의 한 SK텔레콤 매장에 회수된 갤럭시노트7이 쌓여 있다. 교환·환불은 연말까지다. [뉴시스]

갤럭시노트7 단종 발표에도 교환·환불 의사가 없다는 고객이 한둘이 아니다. 단종 이후 이동통신 대리점에서 교환·환불이 시작된 게 13일. 영업일 기준 나흘이 지났지만 국내 55만 노트7 사용자 중 스마트폰 교환·환불에 나선 이는 10%가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이동통신업계는 집계한다. 세계적으로도 아직 100만명이 넘는 소비자가 노트7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상당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노트7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알리기도 한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노트7을 소지한 소비자들은 신제품이 출시되자마자 구매에 나섰다는 점에서 새로운 기능을 중시하는 얼리 어답터일 것”이라며 “노트7이 새로 탑재한 기능이 안전 이슈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여기는 소비층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노트7을 ‘레어템(희귀한 수집 물품)’으로 여겨 계속 쓰거나 보관하려는 소비자가 많을 것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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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연말까지 노트7을 교환·환불받지 않고 버티면 손해는 점점 더 커질 전망이다. 우선 해외 여행을 갈 때 스마트폰을 가지고 갈 수 없다. 지금까지 노트7의 항공기 반입을 금지한 해외 항공사는 일본항공과 전일본공수(일본)·에어아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항공(싱가포르)·콴타스항공(호주) 등 전세계 10여곳이 넘는다.

미국 항공기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미국 연방항공국(FAA)은 16일 노트7 기내 반입 금지령을 내리며 “해당 기기를 들고 항공기에 들어가는 것은 범죄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노트7을 들고 비행기를 타다 걸리면 최대 17만9933달러(2억원)의 벌금을 내야 하고, 이를 몰래 숨겨 들어가다 적발되면 최대 10년 징역형에 처해진다.

내년부터는 맘편히 노트7을 쓸 수도 없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어려워지고, 고장이 나도 부품을 구할 수 없어 수리를 받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혹시라도 내년에 마음이 바뀌어도 교환·환불을 받을 수 없는데다, 내년 이후 노트7에 배터리 발화 사고가 나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얼마나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명확하지 않다. 송동현 밍글스푼 대표는 “시중의 노트7이 완전히 수거되지 않은 이상, 추가 발화 사고가 날 때마다 삼성전자는 이미지 타격을 받게 된다”며 “이런 리스크를 완전히 제거하려면 좀더 적극적으로 교환·환불을 독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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