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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병역세, 군필 시비 잡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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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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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 논설위원

경제학자 눈으로 병역은 영락없는 세금의 일종이다. 일정 기간 국가가 청년들의 노동력을 거의 공짜로 취하기에 엄청난 중과세와 다름없다는 논리다. ‘시한부 노예노동’이란 악담도 그래서 나온다.

그러니 과거 금품만 내면 병역에서 빼주는 편법이 곳곳에서 성행했던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시대 영조 때 무명 2필의 군포(軍布)를 바치면 공식적으로 군역에서 빼주는 균역법이 시행됐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에도 300달러만 내면 전쟁터에 안 끌려가는 ‘징집법’이 실시돼 원성을 샀다.

지금도 이 제도가 살아 있는 나라가 꽤 있다. 터키와 몽골에서는 각각 660여만원, 450여만원의 병역대체금을 내면 복무 면제다. 알바니아도 같은 제도를 운영했다 2010년부터 모병제로 바뀌었다.

스위스는 같은 듯 다르다. 건강 문제 등으로 군대에 못 가면 30세까지 수입의 3%를 병역세로 내야 한다. 올 초 한국 신입사원 평균 연봉은 3200만여원. 우리로 치면 군미필자는 연 100만원가량의 병역세를 부담하는 셈이다.

최근 국회 김영우 국방위원장이 이 같은 스위스식 병역세를 검토하자고 제안해 화제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도 “의미 있다”고 맞장구를 쳐 공론화될 기세다. 김 위원장은 심지어 “여성에게 병역세를 매기는 것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해 여성계가 들고 일어났다.

병역을 돈으로 때운다고 다 같은 게 아니다. 터키·몽골처럼 병역대체금을 내기만 하면 면제해 주는 방식은 ‘흙수저’만 군에 갈 위험이 크다. 하지만 일단 멀쩡한 청년은 다 입대시키는 스위스식 모델을 택하면 형평성 시비를 줄일 수도 있다. 참고로 “대만에서는 여성에게 병역세를 매긴다”는 괴담이 돌기도 했지만 이런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

징세 제도가 빈부격차 해소에 활용되듯 병역제도 잘만 하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 예컨대 고학력자일수록 복무기간을 줄여주면 교육 수준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실제로 이집트 복무기간은 대졸 12개월, 고졸 24개월, 중졸 36개월이다. 이런 규정 아래서는 가능한 한 진학하려 할 게 틀림없다.

병역제는 때론 사회 통합에 쓰이기도 한다. 독일 정부는 통독 직후부터 동독 청년들도 입대시켜 서독 젊은이들과 함께 훈련받고 생활하게 함으로써 국민 통합에 큰 성취를 이뤘다. 병역세 문제가 가뜩이나 악화된 남녀 간 갈등으로 변질되기보다 사회 통합 차원에서 다뤄지도록 모두가 신경 쓸 일이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