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선만 추구하면 분열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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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궁극적인 선은 이 땅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완전한 동그라미는 머리 속에만 존재할 수 있다. 만약 그 동그라미를 콤파스로 백지 위에 그린다면 그것은 완전한 원이 아닌 불완전한 원이 되어버리고 만다. 사람이 종이위에다 그려놓은 동그라미를 현미경으로 보면 그 동그라미는 뱀이 개구리를 잡아 먹은 것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바벨탑이야기가 나온다. 사람이 탑을 높이 쌓아올려 하늘까지 닿아보려고 한다. 그때 하느님은 이 탑을 헐어버리고 사람들을 이리저리 흩어버리고 만다. 이 이야기가 뜻하는 교훈은 사람이 절대 선을 추구하다가는 분열만을 가져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 기성세대가 그려놓은 불완전한 동그라미를 무섭게 탓하는 젊은 세대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완전한 동그라미를 백지위에 그릴 수 있다는 착각과, 나는 절대선을 추구하는 스스로 선한 사람이란 독선은 분열을 넘어서 파멸까지도 가져오게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요사이 일부 진보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반미·반일의 구호가 심심찮게 터져나오고있다.
외세를 몰아내고 완전한, 자주하는 민족이 되겠다고 하는 소리는 마치 천사의 소리같이 들린다. 실로 이민족이 반만년동안 완전히 벗어난 적이 없는 외세의 영향을 오늘의 새세대가 몰아내 준다니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신약성서에는 이런말씀이 나온다. 『악령이 어떤 사람안에 들어있다 나와 쉴곳을찾아 헤매다가 다시 되돌아간다. 돌아가서 그집이 비어있을뿐 아니라 말끔히 치워지고 잘정리되어있는 것을 보고 자기보다 더흉악한 악령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 자리잡고 산다. 그러면 그 사람의 형편은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된다』하나의 악령을 쫓아 내고보니 그 빈집에는 일곱의 악령이 몰려들더라는 말씀이다.
미국인·일본인을 선한 사람이라고 보고싶지는 않다.
모든 민족이 다 자기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남을 위해 살아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을 몰아내자는 주장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를 몰아내면 일곱이란 더 농도 짙은 악의 세력이 밀려 들어오고야 만다는 사실이다. 구한말 청의 세력이 물러나고 나니 바로 일본의 세력이 밀려들지 않았던가.
8·15해방후 미군이 물러가니 붉은 군대가 밀려내려 왔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이 일곱배나 농도 짙은 악령을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피를 흘렸을까. 자주를 부르짖으며 미군을 몰아낸 월남땅에는 소련군대가 미군의 땀냄새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그 자리를 바로 메웠다. 이 땅위에는 절대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다 상대적인 선 뿐이다. 이것도 악에 가깝고 저것도 악에 가깝다. 다만 우리는 이두 악 중에서 보다 적은악을 택하여 살아갈 뿐이다.
몇년전에 캐나다 북극 가까운 작은 마을에 들렀던 적이있다. 마침 그 마을에는 북극부근의 미국 핵실험기지를 몰아내기 위한 반핵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회자가 필자를 보고 한국에도 여러곳에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는줄 아는데 한마디 하라고한다.
그래서 서슴지 않고 말했다. 『나는 한국에 핵기지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민은 핵무기보다도 붉은 군대를 더 무서워하고 있다. 만약에 핵무기가 붉은 군대의 남침을 막아준다면 우리는 그쪽을 택하겠다』좋든 나쁘든 오늘의 나와 대한민국이 이 땅에 존재하게 된 것은 국군묘지에 누워 고이잠든 선열들과, 그리고 그분들과 함께 피흘려 싸워준 우방 장병들의 덕택이다. 별이 그려진 깃발을 끌어내리면 망치와 곡괭이가 그려진 깃발이 펄럭이게 될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불완전한 우방일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은 하나의 악령이지 일곱의 악령은 아니다. 일곱배나 농도 짙은 악령은 3·8이북에 있고 시베리아 벌판에서 배회하고 있다. 머리속에만 존재하는 절대 선 때문에 오늘의 삶을 깨뜨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냉수를 마시면서 한번 더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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