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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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현대는 「영웅」의 출현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 대신 「스타」를 탄생시킬 뿐이다. 다시 말해서 대중을 호령하고 지배하던 영웅의 시대가 아니라 대중과 함께 울고 웃는 「스타」의 시대」라는 뜻이다.
그래서 「시저」나 「나폴레옹」「맥아더」의 자리를 대신하여 「실베스터·스탤론」「마이클·잭슨」「마라도나」같은 스타가 「대중영웅」(pop hero)으로 등장, 우리들의 사랑을 받는다.
「스타」란 글자 그대로 별처럼 반짝 빛났다가 사라지는 것. 그러나 이들 스타 중에는 오랫동안 그 빛을 잃지 않고 대중의 사람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그 스타 중의 한 사람인 코미디언 서영춘씨가 1일 세상을 떠났다.
코밑에 자그마한 수염을 붙이고 회색 연미복에 실크 해트, 거기에다 스틱을 든 그의 모습은 언뜻 왕년의 대 스타「찰리·채플린」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서영춘씨의 코미디는 「채플린」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같다. 어딘가 모자란 듯 하면서도 고춧가루처럼 톡 쓰는 맛이 있는가 하면, 경망스럽다고 느껴질 만큼 잽싼 동작과 속사포로 쏘아대는 말 속에 숱한 해학과 따뜻한 인간미가 넘쳐흐르기도 한다.
사람을 웃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근엄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한국인을 웃기기란 더욱 어렵다.
그러나 서영춘씨는 「잘 웃지 않는 사람」들을 웃기며 60평생을 살아왔다. 때로는 바보짓도 하고, 때로는 재치도 부리면서 그는 우리 나라 방송코미디에 큰 봉우리를 하나 쌓았다.
『웃기네』『좋아하시네』『요건 몰랐지』와 같은 한 시대를 풍미한 많은 유행어를 만들어낸 장본인. 그래서 때로는 저속하다는 비판도 들었다. 그러나 그런 비판을 하는 사람까지도 그 유행어를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코미디의 묘미며 서영춘씨의 매력인지도 모른다.
서영춘씨의 어떤 글을 보면 그는 국민학교(무학) 시절부터 급우들의 「우상」이었다. 선생님들의 흉내를 너무나 신통히 냈기 때문이다. 그는 흉내뿐 아니라 만화도 잘 그렸다.
그림 솜씨 때문에 그는 황금좌(현 국도극장)간판 그림장이로 취직했지만 역시 본령은 속일 수가 없었다. 악극단을 따라다니다가 한 희극배우 대역으로 출연한 것이 인연이 되어 무대에 섰다.
그러나 그의 황금시대는 64년 라디오 서울(TBC 전신)의 개국과 함께 선보인 『살사리 서영춘』『꽁생원 상경기』등 방송 코미디에서였다. 특히 TBC-TV의 『유머극장』 『좋았군 좋았어』는 코미디와 유머를 대중극에 정착시킨 히트프로였다.
그러고 보면 서영춘씨는 웃음이 메마른 가장 어려웠던 시대에 살면서 많은 소시민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준 공로자다.
평소 『대중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되 스스로는 웃음거리가 되지 말라』고 했던 그의 말은 새삼 감동을 주는 명언이다.
자신을 낮추어 남을 즐겁게 한 생애는 확실히 귀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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