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 이젠 아프리카의 희망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01호 30면

르완다라는 나라가 있다. 1994년 세계를 경악시킨 대량학살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도 르완다를 검색하면 제노사이드(genocide·특정 집단 말살 목적으로 한 대량학살) 관련 기사가 많이 뜬다. 이건 부당하다. 마치 올림픽 개최 전까지 대한민국을 전쟁을 겪은 나라로만 여기던 외국인들의 기억이 우리에게 부당했던 것처럼. 르완다인들은 내전을 겪은 국민이 아니라 내전을 극복한 국민으로 기억되고 싶어 한다.


아프리카 중동부. 경상남북도를 합친 정도의 면적에 서울시 정도의 인구가 살면서 울산시 정도의 예산을 쓰는 나라. 웬만한 지도에선 국경 밖에 나라 이름을 써야 하는 작은 나라. 그러나 르완다가 겪은 비극, 르완다가 이룬 성취, 르완다가 꾸는 꿈은 결코 그 면적처럼 작은 게 아니다. 인구만 봐도 리비아의 두 배, 보츠와나나 나미비아의 다섯 배니 그냥 작다고만 치부할 나라가 아니다. 과거의 비극은 식민지 시절의 모순이 다수족에 의한 소수족 학살이라는 잔혹극으로 곪아 터진 거였다. 하지만 지금은 지속적 성장으로 주목받는다.


오늘날 르완다의 1인당 국민총생산(GDP)은 700달러를 조금 넘는다. 우리가 언제 700달러 선을 넘었는지 찾아봤다. 1975년 무렵. 한반도에서 휴전이 이루어진 지 22년째 되는 해였다. 올해는 르완다에서 대량학살이 벌어진 지 22년째 되는 해다. 경제발전의 초석이 나라 곳곳에 놓여지고 있던 우리의 ‘22년차’ 무렵처럼,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는 자고 깨면 새로운 빌딩이 솟아오른다. 거친 비교이긴 하지만, 르완다를 방문하는 한국인은 쉽사리 과거의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한·르완다 양국관계의 중요한 기초다. 그러나 르완다가 우리를 뒤에서 멀찍이 추격해오는 모습만 지닌 건 아니다.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르완다의 국민통합 과정은 이미 22년어치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 10월 3일 개천절, 우리 대사관은 국경일 리셉션을 열었다. 대사로서 연설을 해야 했다. “26년 전 오늘 독일이 통일됐습니다. 몇 분이 제게 물어보셨어요. 왜 한국 국경일 리셉션을 독일 통일기념일에 하냐고. 미안하지만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올해로 4348주년을 기념하는 우리 개천절에 하필이면 독일이 통일을 했던 겁니다. 대한민국은 오랜 역사를 가진 자랑스러운 나라입니다. 특히 지난 한 세기 동안 이룬 성취에 관해선 자랑거리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소리로 자랑해도 한국은 불완전합니다. 아직 분단국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10월 3일을 맞으면 통일을 이룩한 독일이 더욱 부럽고, 역사가 제공한 기회의 창을 놓치지 않은 독일 국민들이 존경스럽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국은 반드시 통일을 이룰 겁니다. 언제, 어떻게 일지 정확히 아는 이는 없지만, 한반도의 분단은 머잖아 해소돼야 마땅한 잠정적 비정상 상태입니다. 그래서 한국인은 통일을 준비합니다. 그날이 오면, 우리에게 가장 큰 과제는 국민화합과 사회통합이 될 터입니다. 바로 그것이 제가 르완다에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발견하는 이유입니다. 르완다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자존감에 기초한 통합이야말로 장차 한국이 르완다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할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우리 화가 몇 분이 워크숍을 위해 르완다를 방문했다. 이 나라의 비참한 역사와 눈부신 성취를 설명했더니 진솔한 질문이 돌아왔다.


“한국이 르완다를 중점협력대상으로 정해 많은 개발협력 사업을 한댔는데, 돌아올 게 뭐가 있다고 그렇게까지 하는 거죠?”


이렇게 답했다. 무역과 투자는 우리가 얻을 이익을 바라보면서 한다. 가령 르완다에 4G/LTE 전국 인터넷 망을 설치한 KT의 투자는 장차 이곳을 기반으로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우리가 얻을 경제적 기회·이익을 조준하고 있다. 그러나 개발협력은 과거 우리를 원조해준 나라들이 그랬듯, 지구촌의 고른 발전이 인류 전체에 유익하다는 믿음에 바탕을 둔다. 하지만 국민 세금으로 이뤄진 원조를 무턱대고 줄 수는 없다. 원조를 제공하는 중요한 하나의 기준은 수원국의 원조효과성이다.


르완다는 오늘날 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물 정도의 청렴, 선정(거버넌스)과 좋은 치안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자원시장이 침체된 후에도 7~8% 성장을 지속하고 있으며, 원조효과성은 최상의 평가를 받고 있어서 작은 도움으로도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나라다. 물론 르완다가 앞으로 극복해야 할 도전은 지금까지의 성취보다 크고 어려울지도 모른다. 민간부문과 중산층 육성, 에너지와 인프라 확충, 시장 확대, 지역통합 심화 등 녹록잖은 과제가 앞에 놓여 있다. 하지만 눈물의 대륙으로 불려온 아프리카에 자신감을 심어줄 성공사례가 필요하다.


아시아에서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르완다의 성공이 아프리카의 빛나는 본보기로 자리 잡는 날, 르완다에 뻗었던 우리 손길은 우리 자신에게도 자랑스럽게 기억될 것이다. 여담이지만, 르완다가 장차 올림픽에서 딸 첫 메달도 태권도에서였으면 좋겠다. 자생적으로 착근된 태권도가 어느덧 1600여명의 등록 선수를 만들어냈으니, 헛된 공상만은 아닐 터다.


박용민


주르완다 대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