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경기와 관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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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스포츠란 무엇인가. 22일 밤 대구 야구 경기에서 라이온스팀과 해태 팀의 대전을 보고 난 관중 일부가 선수들에게 돌과 빈 병을 던지다가 끝내는 해태 팀 의 전용버스를 불태워 버린 불상사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23일 대구경기 뒤에도 역시 소란이 있었다.
운동은 신체단련을 통해 개인적인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은 새삼 얘기할 필요도 없다. 이런 운동을 경기로 발전시킨 것은 운동의 효율을 보다 높일 뿐만 아니라 이 경기를 구경하면서 즐기자는 것이다.
경기자나 팀에 따라 편이 갈라지고 자기편이 이기기를 바라고 응원을 하는 것은 자연발생적인 인간 감정의 움직임일 것이다. 응원이 집단을 이루면 그 집단의 구성원들은 소속감을 확인하고 단결을 더욱 굳힐 수 있다. 요즈음은 오히려 이러한「부수적 효과」를 목적으로 경기를 벌이는 경향도 있다. 이것이 정치적인 목적에 이용되는 사례도 없지 않다.
그러나 소속감과 단결만 지나치게 강조되면 맹목적인 배타주의에 빠지기 쉬우며 그것이 심해지면 까닭 없는 적대감마저 유발시키게 된다. 더구나 경기가 특정지역을 대표하는 성격을 띠고 있을 경우 지역감정까지 자극하는 사태가 따른다.
대구의 불상사를 바로 이런 지역감정으로 단정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우리는 사태가 그런 심각한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대구경기에 앞서 광주에서 있었던 경기에서 자기편 선수가 관중이 던진 병에 얻어맞은 일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했다고는 하나 그것도 일종의 흥분과 화풀이 일뿐 상대지역에 대한적대나 증오는 아니리라고 생각한다.
운동경기는 경기를 하는 당사자를 제외하면 하나의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선수들의 힘과 기량이 연출해 내는 절묘한 경쟁을 보면서 때로는 긴장하고, 때로는 환호하고 격려하며 즐기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긴 팀에는 축하의, 패배한 팀에는 위로의 박수를 보내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내편이 졌다고 하면 이긴 것보다야 기분 좋을 리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쪽에 무슨 재앙이 내려지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지난번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이 일본을 누르고 2위를 했다고 해서 한국이 일본보다 국력이 강해졌다거나 일본보다 선진국이 됐다고 생각을 고쳐 할 사람은 하나도 없는 거나 한가지 이치다.
「승패는 병가의 상사」란 말도 있듯이 운동경기의 승패 또한 마찬가지다. 세계 정상을 제패했다고 천장 모르고 뛰던 한국 탁구가 불과 보름도 못 가서 그때의 패자 앞에서 무릎을 꿇던 일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스포츠경기의 관전은 한바탕의 흐드러진 잔치마당을 바라보는 구경꾼의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흥겹게 놀다가 돌아서면 다 잊어버리고 다시 일상의 평정으로 돌아갈 줄 알아야 한다. 편을 갈라 응원을 하는 것까지는 좋다. 그러나 경기결과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경기장 질서를 파괴하는 폭력을 행사한다면 문화국민의 성숙된 모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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