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표현」가능성에 도전|현대 도예 새장을 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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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도예가 신상호씨 (40·홍익대 도예연구소장)가 한국 도자기예술에 혁명의 기치를 들고 나왔다. 오밀조밀한 기형을 버리고 양괴감 있는 구운 흙덩어리를 처음 선보인 것이다. 신씨는 28일부터 11월2일까지 프레스센터 서울갤러리에서 발표전을 갖는다.
이에 앞서 자신의 가마(요)가 있는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부곡리 「송남도요」 에서 작품 평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미술평론가 이경성씨 (국립현대미술관장) 는『도자기로 만든 조각 (시래믹스컬프처=도조)』이라고 평했다.
이일씨 (홍익대교수)도『우리 도자기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환경도예」의 탄생』이라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신씨는 20여 년간 신라토기의 투박함, 고려청자의 정교함, 조선백자의, 담백함을 잇는 전통도자기에 매달려온 중견도예가.
그가 이런 「흙의 변신」 을 일으킨 것은 84년 미국 센트럴콘주립대에 교환교수로 다녀와서부터다.
남달리 우리도자기에 집착, 성형·소성·유약 등의 문제에 통달한 그가 「전통도예」 에 도전장을 던진 것은 세계적 추세를 직시한 현대 도예가로서 자각과 흙의 무한한 표현 가능성에 대한 실험정신으로 평가되고 있다.
신씨는 『전통은 도예가 스스로를 비춰주는「거울」일수는 있을 망정, 현대 도예가의「지표」 일수는 없다』 고 우리도예의 새로운 이정표와 국제화를 제시했다.
신씨의 도조작품은 석류를 반 조각으로 갈라낸 것 같기도 하고 사탕의 심장모양 같은 진홍빛 기관으로도 보이고, 군데군데 오목 팬 구멍이 있는 검은 비석 같은 생명체의 표상으로 창출되었다.
작품 하나 하나가 조각적인 모뉴멘턱리티를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
형체는 지극히 단순하다. 그러나 그 단순한 형체는 내부로부터 밀려나오는 듯한 충분한 양감을 가지고 있다.「겉」 과 「속」 이 다같이 볼룸과 곡선, 밀도 높은 색채(유약)의 대비를 통해「도조」의 새로운 얼굴을 선보인다.
신씨는 72년이래 국내에서 4번, 국외에서 20번의 전시회를 열었다. 국내외 도자기 공모전에도 10여 차례 입상경력을 가진 정력적인 도예가다. 하지만 이번 내놓는 작품들은 수십 번의 실패를 거듭하면서 뼈를 깍는 아픔으로 만들어낸 산고작 이라는 것이다.
도예가들은 이번 「신상호 도조전」이 『우리 나라 현대도예에 있어서 하나의 새로운 장이 될 것이다』 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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