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서 40년 봉직한 장세헌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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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6·25직전 동숭동 문리대캠퍼스에서 열렸던 교수회의에서 좌익학생징계에 동조했던 교수들이 환도직후 좌익계 학생들에게「반동어용교수」로 몰려 큰 곤욕을 치를 때는 교직생활에 회의를 느끼기도 했읍니다.』
15일 서울대개교 40주년과 함께 재직 40년을 맞는 장세헌교수(64·화학).
『되돌아보면 지난40년은 파란과 곡절로 점철됐습니다. 매일매일 사건의 연속이었으니까요.』
46년 경성제국대학 화학과를 졸업, 서울대에「조무원」(지금의 조교수)으로 부임한 장교수는 영욕의 40년 세월을 거치는 동안 국대안반대파동-4·19학생의거-김태훈군 투신자살(82)- 이재호·김세진군 분신자살(86.4)등 격동의 시기를 말없이 지켜봤던 서울대 역사의 산증인.
지금까지 장교수가 길러낸 제자는 1천3백여명. 그중 2백여명이 박사. 서울대 화학과교수 22명 전원이 장교수의 제자다.
장교수는『서울대 40년 재직기간중 6·25전쟁으로 인한 피난시절 부산 동대신동 산중턱에 임시교사를 지어놓고 학생8∼9명을 상대로 3학기(52.1∼53.6)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강의를 한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당시 실험실은 범일동에 있었던 대선양조공장의 방한칸을 빌어 썼다.
『제자중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것이 소원』이라는 장교수는『노벨상은 연구시설, 연구의 집적, 학자들의 공동노력 등 3박자가 맞추어져야 하며, 그 가운데서도 우리의 부족한 연구시설 보완이 제일 급한일』이라고 했다.
정년을 2년 남짓 앞둔 장교수는 서울 동교동에서 노모(91)를 모시고 부인 정현식여사(63) 및 큰아들 직현씨(37·서강대 전산과교수) 내외와 함께 살고있다. 취미는 등산. <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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