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들이 즐겨찾는 명소의 문화를 알아본다-백마 학사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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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지금 젊은 시민들은 크게 변하고 있다. 이제 젊은이들은 기성세대가 자신의 과거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세대가 아니다. 생각하는 것, 지향하는 것, 또 행동하는 것이 다르다. 이웃 일본에서는 신인류란 말도 쓴다. 과연 어떻게 다른가. 그들이 즐겨찾는 명소를 찾아 새 문화현장의 단면을 시리즈로 엮어본다.
신촌역에서 문산행 경의선 완행열차를 타고 30분쯤 달리면 백마역. 역사를 벗어나 오른쪽 골목으로 2백m쯤 걷다보면 확 트인 벌판을 뒤로하여 일군의 주점가를 볼 수 있다.
이름하여 백마학사촌.「화사랑」「초록언덕」(구 썩은사과」)「지하」「취발이」「고장난시계」「열두마당」「공간화랑」「원두막」「청산별곡」「구둘목」등 족히 15군데는 된다. 주점마다 향토색을 살리려한 흔적이 엿보인다. 근년들어 젊은 시민들, 특히 대학생들의 명소가 된 곳이다.
「화사랑」대표 김원갑씨(39)는『이제 주말이면 하루평균3천여명씩 몰려와 자리잡기가 힘들 정돕니다. 평일에도 8백여명은 찾아오지요』라고 말한다.
김씨는 바로 이곳에 처음으로 터를 닦은 장본인. 홍익대 미대출신인 그가 이 지역에 자주 스케치하러 왔던게 인연이 됐다. 그는 79년 이곳에「화사랑」을 열었다.
처음엔 미술인 연극인 등이 단골이었다. 지금처럼 많은 주점이 들어선 것은 1, 2년 사이의 일.
무엇에 끌려서 여기까지 오는 걸까.
『서울에서 느낄 수 없는 시골정취가 좋아요. 젊음이 발산되는 강렬한 분위기도 좋구요.』
「화사랑」에서 만난 고희정씨(21·이화여대2년)의 말이다.
한달에 두 번 정도 주말에 주로 친구들과 이곳을 찾는다는 이홍규씨(20·중앙대2년)는『답답한 마음을 풀고 싶어서』왔다고 했고 한달에 한번쯤 온다는 임경숙씨(22·회사원·여)는『덜컹거리는 완행열차를 타고 떠나는 재미도 괜찮다』고 말했다. 대부분「탈서울의 맛」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이들은 그냥 내킨 마음에 서울을 훌쩍 떠나 5천원 안팎의 술값으로 그런대로 맛이 괜찮은 원당막걸리를 들이키며 젊은 날의 고뇌·사랑·인생과 시국문제 등을 토로한다. 합창도 한다.
김윤정씨(21·한양대2년·여)는「어떻게 살 것인가」가 끊임없이 자신들을 괴롭히는 주제라고 말했다. 사회에 대한 새로운 눈뜸, 실존과 용기의 문제가 이들을 자극하고 있었다.
『앞으로 취업문제·입대문제 등이 걱정입니다.』
이광재씨(21·경희대2년)는 최근 자신의 미래문제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김원씨(22·이화여대3년)는『우리들의 얘기는 궁극적인 물음만 던질뿐 대답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뚜렷하게 보이는 것만을 추구할 뿐 이상을 포기하는 현상에 대해 아쉬워했다.
백마거리에서의 논쟁은 대개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논쟁이라면 현실비판적인 친구와 주어진 현실에 적응하거나 공감하려는 친구사이에 일어나지요.』
최기진씨(21·인하대2년)의 얘기다. 한 학생은『직접 행동은 안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혁명적인 입장을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그는 개량주의란 스스로 편해지기 위한 자기합리화의 방편같이 생각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고장난 시계」에서 만난 김영민씨(32·회사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박대를 받듯이 사랑하고픈 사회로부터 긍정적인 미래를 발견하지 못하고 헤매는 젊은이들을 위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이제 백마의 거리는 변하고 있다. 이전의 멋을 상실해가고 있다. 사람들의 공해에 서서히 물들어 감을 여기저기서 느낄 수 있다. 곳곳에 오락장이 차려지고 여관들도 들어섰다.
「화사랑」대표 김씨는 원래 구상했던「문화의 거리」가 이런 것은 아니었다며 약간은 허탈해했다. 생각하며 살기를 원치 않는 많은 젊은이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했다. 아뭏든 오늘도 젊은이들은 백마로 몰려간다. 그리고 활화산 같은 그들만의 젊음을 발산한다.
오늘 비록 정신을 말끔히 씻어줄 결론을 얻지는 못했지만 서로 공감하고 위안도 얻었다.
홀가분한 마음, 밤하늘의 별빛을 바라보며 하오9시40분 마지막 열차로 다시 서울로 향한다.<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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