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부예선 최종전서 일본 꺾겠다" | 테니스 혼복도 이겨 4관왕 차지한 유진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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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4관왕의 위업이 이루어지는 순간 환호하는 관중에 손을 흔들어 답하는 그의 모습은 역시 테니스 최강자 다왔다.
감정의 기복을 겉으로 거의 드러내지 않는 「만딩고」 유진선(24·대우증공업) 도 아시안게임 남자테니스 사상 최초의 4관왕에 오르는 감격을 삭일수는 없었나 보다.
『너무도 기쁩니다. 사실 정순이 누나의 컨디션이 몹시 저조해 혼합복식의 우승은 크게 자신할 수 없었거든요.』
유는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모든 공을 파트너인 이정순에게 돌렸다.
유는 대포알같은 강서브에 이은 저돌적인 네트 대시로 대표되는 공격형 선수.
1m 85cm의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힘을 바탕으로 스트로크도 좋고 경기감각도 뛰어나 아시아권에서는 적수가 없다고 평가되고 있다.
유는 시원스런 플레이와 함께 쇼맨십도 뛰어나 관중을 즐겁게 해준다.
한마디로 모든것을 경비한 10년만에 하나 나올까 말까한 천재.
유는 충남 서천중 1년때 테니스를 시작, 무명으로 대전고를 졸업했다.
그러나 「미완의 대기」를 눈여겨 봐둔 울산대 김성호 감독이 끌어줘 울산대로 진학, 김봉수와 함께 복식조를 이루면서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단식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김과는 달리 유는 단식에서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해 대학 4년간은 「김의 복식파트너」 정도로만 대접을 받았다.
유는 무작정 네트로 뛰어들어 공격으로만 일관할 뿐 별다른 세기를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84년 데이비스컵 대표로 선발, 중공을 다녀오면서 유는 서서히 변모되어 나갔다.
「취미」정도로만 대해오던 테니스에 「인생」 을 걸어보기로 한 것이다.
선천적인 힘과 재능에 강훈을 통한 기술이 접목되자 유의 기량은 일취월장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85년 실업 1차 연맹전 상비군선발전 전국체전· 고베 U대회 혼합복식 동메달 등 「실적」 을 내기 시작한 유는 수년간 자신을 괴롭혀오던 오른쪽 발가락 부상이 호전된 지난겨울부터 국내최강의 자리에 우뚝 솟았다.
대표 선발전에서 파죽의 7연승으로 우승, 아시아 서키트 우승 등 파죽의 승리 가도를 질주해왔다.
『6일부터는 일본과의 데이비스컵 동부지역 예선 결승을 치러야 해요. 여기서 이겨야만 마음놓고 푹 쉴 수 있을것 같습니다.』
한차례 영광뒤에 또 다른 영광을 위해 각오를 다지는 유의 눈빛이 믿음직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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