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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실험으로 상황 어렵더라도 통일에 대한 믿음 버리면 안 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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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호 12면

김경빈 기자

지난 3일은 독일 통일 26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사반세기가 지났지만 동서 독일인이 화학적으로 하나가 되려는 ‘진정한 통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국에서 열리는 독일 통일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집권 기민·기사당연합 원내수석총무인 미하엘 그로세-브뢰머 연방 하원의원을 만나 통일의 의미를 되새겨 봤다. 아울러 난민정책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여파로 혼란에 빠진 유럽과 독일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물어봤다.


-독일 통일 26주년을 어떻게 평가하나.“40년이 넘는 동독 사회주의 역사를 한번에 청산하기란 쉽지 않다. 완벽하게 청산이 끝난 건 아니지만 그사이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헬무트 콜 전 총리가 약속했던 ‘꽃피는 동독’이 실현됐다고 할 수 있다. 아직 할 일이 많고 과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성공적인 중소기업들이 동독 곳곳에 들어섰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로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남북한 간의 신뢰 회복과 대화 재개를 위해서는 어떤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독일에서도 통일에 대한 희망이 거의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한 꿈은 실현된다고 생각한다. 핵·미사일 실험으로 관계가 아주 나빠진다고 하더라도 통일에 대한 믿음만큼은 잃지 않아야 한다. 독일인의 경험으로 볼 때 자유보다 더 절실한 건 없다.”


-통일 전 동독은 지금의 북한처럼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지는 않았다. 독일과 한반도의 통일 프로세스는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동독이 바르샤바조약기구 국가였기 때문에 독일이 통일의 기회를 갖지 못할 거라고 말한 사람도 많았다. 동독에서는 핵과 미사일 실험이 없어 독일 통일이 더 쉬울 거라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 보면 당시 동독은 사실상 소련의 지배권 아래 있었고, 관련 국가들이 절대로 독일 통일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사실 독일 통일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앙겔라 메르켈 정부의 난민정책이 거센 반발로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고 들었다. 유럽과 독일에서의 난민 문제가 실제로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가.“실제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난민은 독일에서 수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문제를 독일만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체 유럽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독일인 대다수는 난민을 도와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일부는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세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먼저 전쟁 또는 그와 관련된 주변 환경같이 난민을 발생시키는 현지 문제를 제거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유럽 전체가 힘을 합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유럽 내에서 난민의 공정한 할당이 필요한데 아직까지는 잘 해결되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독일 내에서는 어떤 난민을 수용해야 하느냐가 문제다. 실질적으로 난민의 권리를 가진 사람들은 기꺼이 도와줘야 한다. 그러나 경제적인 이유 등 다른 동기로 독일에 들어오는 불법 이주자들은 내보내야 한다. 무한 지원은 어렵지만 합리적인 지원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치러진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베를린 주의회 선거에서 기민당, 사민당 등 주요 정당이 부진했다.“대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기민·기사당 연합과 사민당 모두 주의회 선거에서 사실상 패배했는데 이건 새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도 없다. 전통적으로 독일에서는 연방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정당들, 즉 여당들이 주의회 선거에선 패배하는 경우가 많다. 반유럽통합·반난민을 내세우는 ‘독일을 위한 대안당(대안당)’에 사람들이 호응했던 것은 그들이 특별한 해결책을 제시해서가 아니고 더 나은 정치를 하고 있어서도 아니다. 다만 기성 정치권에 대한 경고 차원에서 나오는 ‘시위성 투표’로 주의회 선거에서 주요 정당들이 고전하고 있는 것 같다.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의 경우 난민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대안당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런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대안당이 내년 총선에서도 큰 성과를 거둘 것으로 예측하나.“총선을 1년도 앞두지 않은 이 시점에서 대안당은 연방 하원에 진출할 것이라는 여론조사가 나오고 있다. 독일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극우정당이 연방 하원에 진출한 적이 없다. 유럽 통합과 난민에 대한 불만 때문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포퓰리즘 정당의 세가 불어나는 것 같다.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고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 정당이 오래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브렉시트 상황에서 EU와 독일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예측하나.“포퓰리스트 정당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국민투표를 통해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국은 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영국은 좋은 것만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는 ‘체리 피커(Rosinen pickerei)’가 돼서는 안 된다. 영국이 유럽 내수시장에 참여하려면 EU가 내세우는 전제조건들을 모두 수용해야 한다. 공은 이제 영국으로 넘어갔다.”


-브렉시트를 맞는 독일의 국가적 전략은.“EU 공동의 해법을 조속히 마련하지 않으면 유럽은 굉장한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물론 중·동유럽 등 다른 나라들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그런데 유럽에선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각국의 이해관계로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짜증을 내기도 한다. 하물며 유럽에는 큰 문제가 많은데 이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실한 능력을 보여 줘야 한다.”


-청년실업수당 지불 등을 놓고 한국에서 복지 확대에 대한 논쟁이 불붙고 있다. 독일의 경험으로 볼 때 한 국가의 복지제도 수준을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독일은 흔히들 사회적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사회복지와 경제 성장을 잘 조화시켜야 한다는 개념이다. 사회복지는 수혜자뿐 아니라 기여자 쪽도 고려해 수준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독일이 과학기술대국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독일은 학자·연구인력·기업인 등의 ‘머리’로 살아가는 나라다. 독일이 만든 제품은 혁신과 창의적 아이디어에서 나온다고 본다. 독일 정부는 신규 부채를 지지 않는 것을 경제 재정정책으로 삼고 있다. 그렇지만 연구와 교육 분야 예산은 매년 늘고 있는 추세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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