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 소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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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레슬링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같이하고 있다. 그 동작은 마치 야수를 포획하는 모습 그대로다.
BC2000년께의 이집트왕조 때는 물론 중국·인도·메소포타미아 등 고대국가에서도 레슬링과 같은 경기가 있었다. 많은 유적에서 나타난 벽화 등으로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레슬링은 고대 올림픽에서도 주요 경기종목에 들었다. 특히 중세의 기사들은 반드시 몸에 익혀야 하는 필수적인 무예였다.
우리나라에 이 레슬링이 전해진 것은 1930연대 일본 유학생들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43년 서울 YMCA에 레슬링부가 설치되면서 본격적으로 보급되었다.
어느 시합에서나 챔피언이 탄생하는데는 한가지 평범한 진리가 있다. 『결과는 투자와 훈련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이번 레슬링 그레코로만에서의 메달 소나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레슬링협회는 지난 82년 이후 연4억∼5억원씩 금년까지 20억원 이상을 투입, 상비군제도를 만들어 훈련을 쌓았다.
특히 83년에 15억원을 들여 마련한 별인의 전용체육관은 마사지실과 사우나실 등을 갖춘 최신 매머드 시설. 이곳에서 1백명의 선수가 합숙하며 금메달의 꿈을 키웠다.
또 협회는 국민체육진흥재단의 경기력 향상 기금과 별도로 같은 대우의 자체 연금제도를 마련하여 선수들의 생애와 생활을 보장 해 주는데 정성을 쏟았다.
물론 선수들이 흘린 땀방울 또한 엄청난 것이었다. 불암산 기슭의 체력훈련장에서는 7m높이의 밧줄을 하루에 50번씩 타고 오르내렸다. 또 안개가 많은 한강하류의 유격훈련장에서는 이른바 「공기를 가르는 훈련」까지 실시했다. 목소리로 안개를 날리는 극기훈련과 함께 배의 힘을 기르는 훈련이다.
한국 레슬링이 지금까지 각종 국제대회에서 따낸 메달은 대부분 자유형에서였다. 66년 세계대회에서 창맹의 금메달, 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의 첫 금메달도 두 자유형이었다.
그러나 84년 LA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의 감격을 안겨준 김원기는 그레코로만형에서의 승리였다. 협회가 해외전지훈련을 갖는 등 그레코로만형에 특히 주력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스포츠는 「땀과 정성과 과학」의 시합이다. 옛날처럼 체력 하나만으로 버티던 시대는 벌써 지났다. 그 점에서 서울아시아드의 레슬링부문 전 체급·전원메달은 하늘의 기적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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