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나도 괜찮다" | 각서받고 체력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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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시교위와 서울시내 일부중학교가 10일 고입체력검사 수검대상 학부모로부터 「사고가 나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 는 각서를 강요, 반발을 사고있다.
서울시교위는 지난 5일 부산과 홍성에서 중·고교생 2명이 체력장검사 달리기를 하다 숨진 사고가 발생하자 10일부터 l2일까지 실시되는 고입 체력검사 수검 재수생및 검정고시 출신 전원에게 이같은 각서를 받도록 했다.
또 강남의 S중등 일부학교에서는 수검대상 전교생에게 같은 내용의 각서를 사전 제출토록하고 각서를 내지 않을 경우 수검할 수 없다고 학부모에게 통보했다.
이같은 조치에 대해 일선 교육계와 학부모들은 『죽음까지 각오하면서 치르는 수검도 있느냐』 며 『위험한 제도를 당국이 만들어놓고 그에 따른 책임은 체력검사를 치르게 하지 않을 수 없는 학부모가 져야 한다는 처사는 책임 전가 행정을 넘어 일종의 행정력의 횡포로묵과할 수 없는 처사』고 분개했다.
◇각서내용 = 교위와 학교가 수검대상 학생들의 학부모에게 요구한 각서는 「본인은 87학년도 입시 체력검사를 실시함에 있어 전종목 (특히 오래달리기) 의 검사를 해도 건강상의 이상이 생겼을 때 당국에 대해 이의가 없음을 학부모 연서로 각서를 제출한다」 고 돼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위는 『재수생및 검정고시 출신자에 대해 학부형 각서를 제출받아 체력장 수검을 하도록 한 것은 재학생의 경우 담임이나 체육교사가 학생의 건강상태를 어느정도 파악하고 사전지도를 통해 사고의 위험이 있는 학생은 종목별로 수검을 포기하도록 종용하고 있지만 재수생이나 검정고시 출신자의 경우엔 사전지도가 불가능하므로 학부형이 자녀의 건강상태를 파악해 사전 대비하도록 각서를 쓰게 했다』고 말했다.
또 S중 이모 교장은 『자녀의 건강상태에 대해 학부형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또 만약 사고가 난 뒤 학부모가 학교를 과도하게 괴롭힐 경우에 대비, 수검대상 전교생에게 학부모 각서를 받아오도록 했다』 고 말했다.
◇학부모 이은숙씨 (38· 서울 잠실동 27) = 생명을 걸고 수검을 치러야 한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실효도 없는 제도를 만들어 놓고 해마다 수검중 학생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데도 근본적인 개선대책은 외면한 채 책임이나 전가하려는 당국의 처사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수검을 치르지 않을 수도 없으니 체력장이란게 누구를 취한 제도인지 모를 일이다.
◇이경섭교수(고대 체육교육학) = 학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돌봐야 하는 학교측이 『사고가 나도 책임을 안진다』 는 식의 각서를 받는다는 것은 스스로의 의무를 외면하는 비교육적 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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