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세속적인 사치-김정배<고려대 교수·한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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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에겐 지금 이것이 바로 국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있는 종교가 없는 형편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이야기지만 지난날의 우리 나라 역사와 문화를 비교하면 쉽게 드러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다수 국민들이 동일한 종교의 분위기 속에서 생활하는 그와 같은 규범의 실체를 경험하지 못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 역사의 아름다운 문화재가 거의 모두 종교와 관련된 결정체였음을 모르는 식자는 없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지난 세계사의 흐름을 보거나 오늘의 세계를 눈 여겨 보게되면 곧 바로 인지할 수 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종교는 국민의 덕성을 고양시키는 제일의 사명을 지고의 목표로 삼아왔고 성실하게 이를 수행하였을 때 나라의 역사와 그 사회의 문화가 건실하였다는 역사의 증거가 무수히 많다. 만의 하나 종교가 의의 사명에서 일탈하게 되면 종교 자체의 자립은 물론 국민의 믿음을 오도할 가능성이 있게 된다.
필자는 우리 나라 백성들이 어느 특정종교를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고, 또 그렇게 할 위치에도 있지 않다. 그러나 가능한 한 많은 이 땅의 백성들이 하나의 종교를 마음속에 갖는다는 것은 아주 훌륭한 일이라고 믿는다. 근자에 나라 구석구석을 다니다 보면 많은 종교의 위세를 풍기는 건축물을 종종 목도하게된다. 이것으로만 미루어 보아도 이 나라 백성들의 종교열이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더 시간이 지나면 이 나라에 종교를 믿는 인구는 상당히 증가할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다소 의아해 하거나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 중에는 각종 종교의 건축물이 실세에 비례하여 거대화하거나 지나치게 외모를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것은 일반인의 생활이 다소 윤택하여짐에 따라 건물들이 내실을 다진다는 뜻이 있겠지만 만약에 상식선을 벗어나게 되면 종교와 종교인이 사치로 치닫는다는 비난을 받을 우려가 있다.
종교의 사치는「마음의 양식」을 끝없이 쌓아올리는데 경주되어야지 밑도 끝도 없는 외부의 치장에 눈길을 돌릴 필요는 없다. 이 나라의 백성들이 착하고 건실한 삶을 누리도록 종교가 이끌고 나가려면 불요불급한 사치를 종교단체가 먼저 자제해야한다.
그러나 우리는 백성들의 생활방식이 상당히 변모하고 급히 변화하는 추세에 맞추어 종교계의 대응방안도 다르게 취할 수 있고 종교인도 전래적인 생활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영원한 구원과 참된 진리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종교인도 청정무구한 세계에서 사는 것이 아니고 일반인과 같이 이 땅에서 살며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명의 이기를 종교인이 십분 활용한다고 해서 따가운 눈총을 보낼 것이 아니다. 정도에 맞는 이용은 사치일수가 없기 때문이다.
빈한한 자에게 구원과 용기를 더 주어야할 종교가 만의 하나라도 없는 자보다 있는 자에게 더 가깝고 결과적으로 세속적인 부와 권력과 명예를 그대로 답습하게 되면 이는 종교의 본 질에서 벗어나게 된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권력자체로 만족하지 않고 부와 명예까지 독점하려면 여기에는 필경 비극이 따르게 마련이다. 부와 명예도 각기 고유의 영역이 있어 상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것이 무너지고 뒤범벅이 되면 누가 정치인이고 경제인이며 종교인인지 구별할 수 없는 혼동이 온다. 종교는 결단코 권력과 부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선량한 백성들로부터 신성 영역으로 간주돼온 것이다. 왕실이나 전제왕권과 밀착하였던 과거의 종교가 금일에 더 이상 존립할 수 없는 이유는 지난 역사가 좋은 교훈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여야의 정치인들이 각 종교단체의 지도자들을 부지런히 상면하는 것이 좀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기이한 느낌을 받곤 한다. 필자는 정치가 세속사치의 총화라고 간주해 왔기 때문에 정치와 종교의 한계는 분명하다는 논점을 늘 견지하여 왔다. 종교가 정치라는 권력과 어떤 입론에서 마주한다 하여도 멀리 이 나라의 장래를 고려하면 이 역시 권력에 휩싸일 가능성이 상존 하게 된다.
종교가 세속적인 건물의 치장이나 외양에 신경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처럼 정치라는 권력으로 종교를 미화하는 것은 적이 근심스러운 일이다. 모든 종교와 여야는 각기 본래의 자기들 고향으로 돌아가 오염된 먼지를 툭툭 털어 버릴 필요가 있다. 종교가 치장할 수 있는 가장 극심한 세속적인 사치는 바로 적연부동의 경계를 떠나 정치의 문턱을 넘나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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