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회담서 위약|서울회담계기로 알아본 불평등 협정내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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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무역마찰과 일방적인 수입개방압력으로 국민들의 미국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가운데 27일부터 서울서 열리고 있는 항공회담은 또 하나의 관심사.
회담에서 논의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현안은 미국이 김포공항에 미국전용화물터미널을 짓는 대신 한국에 시카고 등 미국 내 3개 지점 운항 권과 유럽까지 이원권을 주기로 했던「80년 양해각서」의 이행문제다. 이 문제는 미국의 무성의로 비롯돼 6년째 승강이가 계속되고 있는 항공분야에서의 두 나라 현안이다.
근본적으로는 사이 최대의 호혜평등의 원칙에 어긋나는 불평등 한-미 항공협정에서 파생된 문제여서 현안의 타결과 함께 불평등조약의 개 정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안>
80년 4월 워싱턴서 열린 항공회담에서 두 나라는 ▲한국 측이 미국의 화물전용항공사인 플라잉타이거(FTL)사의 전용 화물터미널을 김포공항에 짓도록 하는 조건으로 ▲미국은 한국의 대한항공에 오클랜드·앵커리지·시카고 3개 지점 운항 권과 미국의 1개 지점서 유럽까지 연결해 운항하는 이원권을 주기로 합의,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화물터미널이 준공될 때 오클랜드 이원권을 주고 오클랜드 취항 1년 후 시카고, 시카고 취항 1년 후 유럽이원권을 주기로 합의됐다. 앵커리지 운항 권은 우리측이 미 수교국 이원권제한을 해제 통고한 뒤 주기로 했었다.
그러나 미국 측은 이 같은 운항 권 행사의 전제가 되는 김포공항 화물터미널 건설을 늦춰 협정발효를 지연시켜 오다 우리측이 끈질기게 그 이행을 촉구하고 정부투자로 85년 화물터미널 건설을 착공하자 양측의 합의각서가『국내법에 따른 발표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라고 터무니없는 생떼를 쓰고 있다.
이는 당초 동북아항공화물 시장을 노려 서울에 거점을 마련하려 했던 미국 측이 시장전망의 변화에 따라 태도를 바꾼 것. 대한항공에 시카고 등 운항 권을 줄 경우 자국의 여객·화물을 빼앗길 것을 우려한 자기나라 항공사들의 압력에 따른 시장보호정책으로 풀이되나 국제신의와 공정거래정신을 저버린 「비신사적 행위」란 지적을 받고 있다.

<억지>
미국 측은 양해각서 교환 당시 화물청사 건립선택권을 자기네 항공사가 갖고 자국항공사가 이를 행사하지 않을 경우 한국정부가 건립하도록 했었다.
이에 따라 플라잉타이거 사가 청사건립을 추진하다 경영난으로 중도 포기했으나 미국 측은 선택권을 내세워 우리 정부가 터미널을 짓는 것을 지연시켜 왔다.
우리측은 각서발효를 위해 84년 4월, 86년 2월 두 차례 정식회담을 갖고 미국 측에 성의를 촉구했으나 미국 측은 거부자세로 일관해 왔다.
우리측은 미국 측의 선택권포기에 따라 정부투자로 터미널을 건설키로 결정, 이를 미국 측에 통고하고 85년6월 착공해 현재 완공단계.
미국 측은 그러나 화물터미널이 완공되더라도 양해각서는 이미 무효라고 강변하고 한국 측 항공사가 양국간 시장에서 시장점유우위에 있으므로 대한항공에 추가 운항 권을 줄 수 없다고 거절하고 있다.
미국 측은 70년대 초 미 항공사들의 태평양노선 석권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남아각국이 협상을 요청했을 때『항공협정의 기본정신은「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하는 것이지「수익의 균등」을 보장하는데 있지 않다고 거절했었다.
우리측은 그 동안 미국 측의 성의를 촉구하기 위해 서울취항 미국 측 항공사에 대해 과실송금 절차간소화·저상조업장치면세·기자재보관창고 증설 등 혜택을 늘렸었다.

<불평등조약>
57년 체결된 뒤 3차례 개 정된 한미항공협정은 미국 측이 미국 내 모든 지점에서 한국 내 모든 지점을 거쳐 제3국의 모든 지점까지 운항할 수 있는 무제한 운항 권과 이원권을 준 반면 한국 측은 호놀룰루·LA·뉴욕 등 3개 지점 취항 권만 갖고 있는 불평등조약.
아시아의 이웃 나라와 비교해도 일본이 샌프란시스코·뉴욕·괌·앵커리지·시애틀·시카고 등 9개 지점 운항 권과 유럽·중남미로의 무제한 이원권을 갖고 있고, 대만이 7개 지점 운항 권과 2개 지점 이원권, 필리핀이 11개 지점 운항 권·2개 지점이상 이원권을 갖고 있는데 비교하면 지나친 불공평.
싱가포르(운항 6·이원 2개 지점), 태국(운항 6·이원 3개 지점 이상)보다도 적다.
항공관계자들은「배 주고 속 빌어먹는」항공행정의 근본적인 개정문제가 현안타결과 함께 거론돼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엄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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