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복지비 대느라…30년 된 하수관 손 놓고, 도로 확장도 스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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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금천구가 관리하는 하수관로(직경 900㎜ 이하)의 총 길이는 182㎞다. 하수관로가 파손돼 물이 샐 경우 누수는 물론 싱크홀이 생겨 지반침하의 원인이 된다. 꼼꼼한 유지보수가 필수다. 하지만 올해 금천구가 하수관로 유지보수를 위해 마련한 예산은 6억원에 불과하다. 수명이 30년에 육박한 하수관로는 반드시 교체해야 하지만 금천구는 금이 가거나 깨지는 등 심각한 부분만 수리하는 ‘땜질식’ 보수를 하고 있다. 예산이 부족해서다. 전체 하수관로 중 50㎞가량을 5년 이내에 교체해야 한다고 금천구는 판단하고 있으나 엄두를 못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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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리봉동 ‘우마2길’에서 두 차가 간신히 비켜 가고 있다. 예산이 없어 확장을 못하고 있다. [사진 김성룡 기자]

서울 구로구는 상습 정체구간인 가리봉동 우마2길 중 일부 구간(약 380m)의 확장 계획을 2년 전 세웠다. 하지만 아직도 착공을 못하고 있다. 도로 확장에 드는 총예산은 약 140억원. 이 중 126억원은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부담하는 ‘매칭(matching) 사업’이지만 구로구는 구가 부담해야 할 14억원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칭 사업은 중앙정부의 보조금과 지방자치단체의 재원을 매칭해 쓰는 사업을 말한다. 지난해부터 추진 중인 ‘항동 생활체육관’ 건립도 요원하다. 전체 사업비(약 99억원) 중 구로구가 부담해야 할 22억여원을 마련하지 못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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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사회복지비 부담으로 서울시내 25개 자치구의 주요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매칭 예산을 마련하지 못하면 중앙정부의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 자치구 등 기초 지자체가 매칭 사업 지원을 받기 위해 다른 사업에 들어갈 예산을 사회복지에 우선 투입하면서 행정이 멈춰 서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조기에 예산이 소진되는 일도 다반사다.

서울 자치구 주요 사업 줄줄이 차질
성동구, 사고 위험 높은 통학로 등
시 교부금 나올 때만 땜질식 공사

은평구는 올해 도로 유지보수 예산(8억300만원)을 거의 다 썼다. 계획했던 사업을 다 마무리해서가 아니라, 최소한의 예산만 마련했기 때문이다. 은평구 관계자는 “제대로 된 도로 유지관리를 위해선 한 해 10억원 이상이 있어야 하는데 사회복지 예산 부담이 전체의 60%를 넘어 그 정도 예산을 마련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복지 예산의 부담이 크게 느껴지는 건 재정력이 약한 일부 자치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대적으로 여건이 나은 송파구 역시 올 들어 구립어린이집·보건소·복지관 같은 공공시설물의 내진보강공사를 한 군데도 못했다. 내진보강공사가 필요한 공공시설물은 43곳. 공사비는 한 곳당 3000만~5000만원씩, 총 12억~21억여원이 필요하다. 이종수 송파구 예산팀장은 “우리 구 예산이 한 해 5500억원가량 되는데, 복지비 2771억원과 인건비, 행정운영 경비 등을 제하고 나면 한 해 100억원의 사업 경비도 마련하기 어렵다”며 “현실적으로 사업 하나를 제대로 하기 버거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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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동 ‘월드컵대교’도 예산 부족으로 공사가 지연되고 있다. [사진 서울시]

더 큰 문제는 복지비 부담 탓에 자치구의 미래를 그리는 중·장기 플랜은 아예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은평구는 최근 10여 년간 도로 관련 사업계획을 수립하지 못했다. 교통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도로를 확장하려 해도 구 형편상 관련 예산을 마련하기가 어려워서다. 은평구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나오는 조정교부금을 받아야 한 해 사업 한두 가지를 할 수 있을까 말까 한 형편”이라며 “사업 하나에 보통 20억~30억원씩 들어가는데 장기 계획을 세우는 건 언감생심”이라고 말했다. 조정교부금은 시가 자치구 간 재정 격차 해소를 위해 지원하는 돈이다. 서울시가 2010년 착공한 월드컵대교도 복지비 부담에 따른 예산 부족 등으로 당초 계획보다 6년 가까이 늦어진 2021년에야 완공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나마 서울시가 지난해와 올해 초 자치구에 지원한 3373억원의 지원금은 급한 사업을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됐다. 강동구는 이 돈으로 상습 침수지역인 성내1동 지역 노후 하수관로를 개량했다. 성동구도 교통사고 위험이 높은 것으로 지적돼 왔던 옥수초교 앞 통학로에 횡단보도의 안전성을 높인 ‘고원식 횡단보도’를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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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사회복지 관련 부담 역시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2010년 서울시 예산의 21.8%(3조4073억원)였던 사회복지 예산은 올해 34.2%(6조5519억원)가 됐다. 자치구 지원에 쓰이는 서울시의 지원금도 2010년 1조7221억원에서 올해 2조3915억원으로 6694억원이나 부담이 커졌다.

김옥희 서울시 자치행정과 팀장은 “최대한 자치구들이 필요 사업을 문제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긴 했지만, 우리 재정력에도 한계가 있다 보니 현재 같은 복지비 부담 구조를 고치지 않고선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글=조한대·서준석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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