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사고와 국가적「소프트웨어」|김창태<편집국장 대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란 개념이 있다.
컴퓨터단말기는「하드」이고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소프트」다.
「소프트」에는 네 가지 차원이 있다. 이른바 개인적 차원, 집단적 차원, 국가적 차원, 그리고 국제 사회적 차원이다. 야구선수 김시진이 어떻게 투구를 하느냐는 것은 개인적 차원의 「소프트」다.
기업이 인재를 모아서 조직을 하고 생산·판매경쟁에서 전략을 여하히 구사하느냐 하는 것은 집단적 차원의「소프트」다.
국가가 자원과 인력을 관리하고 활용하며 군대나 공무원을 어떤 형태로 부리느냐 하는 것은 국가적 차원의「소프트」다.
또 국가와 국가사이에 무역마찰이라든가 지적소유권이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 같은 때는 이것을 국가간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 하는 문제가 국제사회 차원의「소프트」라 할 수 있다.
문명의 발달은 「하드」와 「소프트」의 양면의 발전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가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개인은 물론 국가와 사회도 발전하고 문화도 번성한다.
지난 십 수년 동안 우리나라도 과학기술과 경제성장에 힘입어「하드」부분은 상당한 수준에 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정권이 바뀌고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외채야 늘든 말든 막대한 돈을 들여 대규모 국제행사를 끝없이 개최하고 그것을 위해 또 기념비적 시설물을 다투어 세우는 바람에 명실공히 「하드」부문은 선진국 뺨치는 것도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세계최고, 최대가 어디 한 두 가지인가.
겉보기에는 모두가 엄청나고 혁신적인 변화인 것이다.
이처럼 대대적인 변화가 「하드」면에서 이루어지면 여기에 걸 맞는 새로운 「소프트」의 개발이 필연적으로 뒤따라야 한다.
이것을 게을리 하면「하드」와 「소프트」사이에 손발이 맞지 않아 삐꺼 덕 소리가 나고 마침내는 문제가 생겨 우당탕 쿵쾅 망가지거나 못쓰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개인이나 기업차원에서는 새로운 「소프트」의 개발에 성공한 사례가 많다.
김시진과 같은 프로야구선수가 아니더라도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첼리스트 정명화 자매가 있는가 하면 최근에는 국제골프 계에 두각을 나타낸 구옥희도 그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다.
각분야에서 이처럼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 그래서 한국사람은 개인적으로는 우수하다는 말을 듣는다.
기업의 예로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256KD램을 개발한 것을 비롯, 반도체에서 첨단제품인 1메가D램까지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 과학기술에 대한 우리의 자부심을 심어 준 것 등을 들수 있다.
문제는 국가적 및 국제사회차원의 「소프트」가 개발되지 못하고 있는데 있다.
중국 천안문의 1·2배나 된다고 자랑했던 독립기념관은 「하드」면에서 볼 때 세계적인 규모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1백10V용량의 전구에 3백80V과 전류를 잘못 연결시킴으로써 불을 지른 결과가 됐다.
그 엄청난 건조물을 다루는 「소프트」의 수준은 민망할 정도였다.
민망한 일은 불에 탄 독립기념관에 그치지 않는다.
서울 둔촌동의 올림픽시설도 지난번 장마때 물 소동을 빚더니 자전거경기장은 바닥에 빗물이 괴어 말썽이 됐다.
충북 영동에 10억 원을 들여 건축중인 난계 국악 당 또한 공사 중 80평 규모의 슬라브 지붕이 폭삭 내려앉았다고 한다.
88고속도로나 수영요트장의 부실도 마찬가지다.
어디 그뿐인가.
동양최대 규모라는 국회의사당 안에서 정치를 다루는「소프트」의 운영을 보면 한심한 마음 금할 수 없다.
부천경찰서 성 고문사건도 피의자를 다루는「소프트」의 후진성이 빚어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거액의 돈만 쓰고 나라의 체면에 먹칠을 당한「디버」사건은 국제적 차원에서「소프트」의 미숙함을 드러낸 대표적 케이스의 하나다.
72만5천 달러의 거액을 주고 「디버」를 로비이스트로 고용했으나 미국정부로부터 미 통상 법 301조에 따른 조치로 지적소유권문제를 얻어맞았다.
우리가 「디버」에게 준 돈은 1백50만 달러를 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계약금보다는 적은 액수지만 10만5천 달러를 내고 50억 달러의 산성비 처리기금을 따낸 캐나다에 비해서는 엄청난 바가지다.
결과적으로 「디버」를 고용한 조치는 보상을 못 받으면서 한국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는 역효과만 초래한 셈이다.
시장개방압력에 대처하는 대만의 솜씨를 보면 그들의 국제적 「소프트」가 우리보다 한 수위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세계의 조류가 너무 급하게 밀려오고 있고 앞서가는 선진국을 뒤따라가기 바쁘다 보면 잘못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비슷한 일들을 거듭 보아 왔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그런 일을 당해야 하는 국민의 마음은 민망스럽고 답답하다.
국가차원이나 국제적 차원의 「소프트」개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정부가 맡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의 발전이라 할 때 대규모의 건조물이나 상징물 같은 외형적인 전시물보다도 새로운 시설을 관리하고 움직이는 「소프트」의 수준이 더욱 중요하다. 「소프트」란 인체에 비유할 때 두뇌와 의식 같은 것이다.
우리가 선진국대열에 끼는 것이 염원이라면 우리의 유형·무형의 능력을 다시 살펴보고 면밀히 점검하는 새 시스템의 정립에 눈을 돌려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독립기념관화재사건을 비롯한 일련의 사건들은 국가가 해야 할「소프트웨어」의 기능, 다시 말해 정치가 긴급히 수행하지 않으면 안될 임무에 관한 경종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줄 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