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통상정책의 속성을 알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이른바 301조 협상을 끝낸뒤 「스미드」미국부대표는 『우리는 모든 것을 달성했다』고 말했다. 「제레지언」백악관부대변인은 『성공적인 결말을 발표하게되어 기쁘다』고 했다. 「야이터」통상대표는 『한국이 301조 현안외에도 담배까지 개방, 성의 있는 태도를 보였다』고 칭찬했다.
의회쪽에서도 『301조 협상의 성공적 타결을 환영』(미상원재무의원장)했고 『한국이 통상분야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음』(상원무역소위원장)을 찬양했다.
그뿐인가. 업계쪽에서도 『미국의 저작권을 보호키로 한데대해 만족』(미국제지적소유권연맹)을 표명했고 보험업계와 컴퓨터·사무기제조협회, 그리고 301조와는 전혀 무관하게 큰 보너스를 횡재한 담배회사들까지도 이번 협상결과를 환영하고 찬양하기에 침이 마를 겨를이 없다. 그간 보도매체에 나타난 반응만으로도 미국의 조야와 업계는 온통 쾌재와 환영 일색이다.
도대체 어떻게 되었길래 서로 상대가 있는 무역협상이 이처럼 한쪽만의 공공연한 쾌재와 만족을 불러올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어느 한쪽에 『모든 것을 달성』하도록 만들어준 협상은 엄밀하게 말하면 협상이라 부르기조차 어렵다.
새삼 지난일을 두고 곱씹자는 얘기가 아니라 앞으로도 이런 협상아닌 협상이 수없이 되풀이 될 것같은 걱정때문이다. 정부는 이번 협상을 일방적 양보로 끝낸뒤 이 협상의 「성공」으로 미국의 거센 보호주의 압력이 크게 완화될 것처럼 기대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속절없는 착각이었음이 금방 드러났다. 한마디 위협에 『모든 것을 달성』 한 미국은 열흘도 못지나 또다시 원화의 평가절상을 요구했고 섬유협상에서는 수입쿼터를 거의 동결하다시피 묶었으며 대한어획쿼터는 작년의 45%로 잘라냈다. 그뿐아니라 반공공연히 장담하던 GSP연장에서도 컴퓨터·장신구등 35개품목을 제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의회는 의회대로 섬유·신발의 대폭규제를 노린 이른바 더몬드법안이 재가결될 기미가 짙어졌다.
이 모든 사태의 진전은 결국 미국 통상전략의 기본속성을 단적으로 반영한다.
그들은 언제나 공정하고 자유로운 세계무역의 안정과 확대를 내세우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언제나 그들만의 일방적 욕심뿐이고 그들이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들은 결코 공정하지도 자유롭지도 않으며 항상 위협과 보복을 전제로한 비열한 수단이 대부분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협상당사자들이 이같은 그들의 무역정책의 실체와 속성을 하루라도 빨리 깨닫는 일이다. 그리고 그들의 협상마다 내세우는 명분과 구실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일중적인가를 깊이 인식하는 일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수출품에 대한 정부보조와 지원을 비난하고 심지어는 일괄통상법안까지 만들어 그에 대한 보복을 추진하면서도 소련에 대한 곡물수출에는 거액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그것도 그들의 우방인 캐나다와 호주의 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결정되었다.
또 그들은 스스로 인종차별반대를 언제나 내세우면서도 의회의 반발을 외면한채 남아공에 대해 섬유수입을 4%나 늘려 허용했다.
그러면서 한국·대만·홍콩의 섬유수입쿼터는 동결했다.
그들은 언필칭 다원사회의 자유경쟁국임을 자처하지만 그들의 개방관심 품목들은 흔히 의회나 백악관 또는 통상관리들에 대한 로비능력에 따라 좌우된다. 자국내에서는 발도 못붙이는 3류 보험회사가 관리덕에 힘입어 개도국에 당당히 입성하는 해프닝도 그래서 생긴다.
그러고도 염치없이 화보풀을 처음부터 똑같이 나누어 달라고 당당히 요구하고 정부는 그것조차 순순히 들어주었다.
이런저런 그들의 속성을 알고있다면 우리의 협상자세도 각오도 달라져야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런 무한정 양보와 개방으로 어디까지 밀려갈 수 있는지를 알고 나서 협상해야 한다.
그것은 양담배를 얼마 수입하느냐의 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다.
대가 없는 양보와 협상 아닌 결과가 눈으로 나타나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김영하<본사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