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서관, 아이들 지식놀이터로 만든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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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남선 사서는 “재능기부는 책을 들고 전국 각지로 떠나는 여행처럼 즐겁다”고 말했다. [사진 최정동 기자]

6년 전 복남선(52) 국립중앙도서관 자료운영과 사서는 서울의 한 아동복지시설에 있는 도서관을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전국에서 기증된 1만8000여 권의 책이 장르 구분도 없이 뒤섞여있는 데다 일부는 박스째 방치돼 있어서였다. 이 때문에 읽고 싶은 책을 찾기가 어렵다 보니 도서관을 찾는 발길도 뜸했다. 다음날 그는 동료 사서들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함께하지 않을래요?” 그 뒤 동료들과 함께 수개월간 주말마다 이 시설을 방문했다. 그는 “1만 권이 넘는 책들을 도서관 분류기준인 십진법에 따라 정리하고, 중복되는 도서 2500권은 작은 도서관 몇 곳에 다시 기증했다”고 소개했다.

복남선 국립중앙도서관 사서
책수레 봉사단 만들어 재능기부
태백·울릉도 등 찾아 책 정리?기증
“문헌정보학과생 등도 동참했으면”

이 일을 계기로 복 사서는 국립중앙도서관 사서들의 재능기부 모임인 ‘책수레 봉사단’을 결성했다. 2010년부터 10여 곳이 넘는 도서관에 도서 2000여 권을 기증하고, 4만 권에 가까운 책 정리를 도왔다. 강원도 태백의 ‘꿈꾸는아이들지역아동센터’, 울릉도의 ‘선원자성지역아동센터’, 경북 영양군의 ‘석보지역아동센터’ 등 지역이나 복지시설의 작은 도서관이 그 대상이다. 5명으로 시작한 봉사단은 지금은 20여 명으로 늘었다.

복 사서는 “아이들이 도서관을 이용할 때 낯설지 않도록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봉사단의 목표”라고 했다.

“수백 권이나 수천 권의 책을 종류별로 나누고 분류기호를 적은 레이블을 책에 일일이 붙여 서가에 꽂아요. 책 목록은 엑셀 파일로 정리하고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쓰던 서가를 재활용해 맞춤형 서가를 선물하기도 했어요. 3~6개월이 걸리는 작업이지만 번듯한 도서관을 본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피로가 싹 가셔요.”

‘책수레 봉사단’은 회원들이 자비를 들여 사거나 국립중앙도서관 안팎에서 기증받은 책을 기부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재능기부를 한 도서관의 운영이 지속 가능하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를 위해 봉사단원들은 도서관 운영자에게 책 정리법을 알려주고 도서관 이용객을 대상으로 도서관 활용법 강연도 한다. “도서관 이용객이 이전보다 몇 배나 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이들의 감사 편지를 받을 때 가장 뿌듯해요.”

복 사서는 1983년 공무원으로 국립중앙도서관 서무과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러다 사서의 꿈을 품고 성균관대 사서교육원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뒤 25년째 사서로 일하고 있다. 한국사서협회 부회장도 맡았다. 인문과학실 안내 데스크에서 일하는 ‘현장 사서’인 그는 “최고의 서비스란 도서관 이용자들의 시간을 절약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은 ‘사서의 재능기부’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지역 도서관 사서와 문헌정보학과 학생들도 도움이 필요한 도서관들에 재능을 기부해 아이들에게 최고의 지식놀이터를 선물하면 좋겠어요.”

글=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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