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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메시아는 없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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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강자가 없는 혼전의 레이스가 시작됐다. 그래도 두 가지는 예측할 수 있다. 누군가는 ‘대통령이 되는 데는 성공할 것’이지만 그도 ‘성공한 대통령이 되지는 못할 것’이란 거다. 1987년 이래 6명의 대통령 모두 남다른 경험을 가졌지만 그들은 메시아도 수퍼맨도 아니었다. 대통령이 지도자가 못 된다는 실망을 넘어 이제는 대한민국의 가장 큰 리스크가 됐다.

그런 현실을 계속 봤으면서도 대선 주자들이 “내가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지지자들은 “이번에는 다르다”라고 또 믿는 모양이다. 국민이 공감하는 시대정신을 말하고, 좋은 공약을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의석구조 때문에) 지키지 못할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양극화가 더 심해졌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안보와 경제가 더 나빠졌다면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국가의 존망을 가를 안팎의 위협 앞에 노출돼 있다. 초인은 없다. 혼자서는 누구도 나라를 구할 수 없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각오는 지금 필요하다.

강한 국가는 ‘좋은 정부’가 만든다(『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성공한 국가를 만드는 결정적 요인은 ‘좋은 제도’에 있다(『국가는 왜 실패 하는가』). 결국 좋은 제도가 좋은 정부를 만들고, 좋은 정부가 좋은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제도가 아닌 좋은 사람의 선한 의도에 의지하는 변화는 배신당하거나 오래가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다. “새치기 하지 말자”고 백 번 계몽하는 것보다 대기번호표를 갖다 놓는 것이 백 배 낫다. 그게 좋은 제도다.

제도는 비가역적 변화를 가져 온다. 1987년 우리는 쿠데타와 혁명을 동시에 폐기하고 직선제 개헌을 통해 평화적 정권교체가 가능한 민주주의 1.0 시대를 열었다. 30년간 ‘87년 체제’는 훌륭하게 제 역할을 했다. 이젠 쿠데타와 혁명의 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이제 30년이 지났으니 또 다시 큰 합의를 통해 새로운 민주주의 단계(민주주의 2.0)로 올라설 때다.

‘민주주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과 ‘민주주의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는 말 모두 동의한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년은 지금보다 ‘더 좋은 민주주의’를 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러려면 우리가 가고자 하는 경제 모델, 복지 모델과 잘 어울리는 정치 모델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빈부격차를 줄이고 복지를 확대하기 위한 ‘중부담·중복지’와 노동개혁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에 합의한다면 거기에 걸맞게 정치 제도도 바꿔야 한다.

양당제, 다수제 민주주의, 승자 독식주의로 상징되는 영미식 민주주의는 우리가 가는 길과 맞지 않다. 민주주의를 발명하고 수출한 영국과 미국의 ‘원본 아우라’가 이제는 종말적 징후를 보이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진원지였던 미국과 영국에서 반(反)세계화의 광풍이 불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영국은 유럽연합(EU)에서 나가기로 결정했다. 미국도 고립주의를 향한 위험한 역주행을 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이 실제로 ‘휘청거렸기’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출현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와 미국의 트럼프 현상은 영미 모델의 파산적 징후다. 도발적으로 예견한다면 50년 뒤에도 미국의 대통령제와 영국의 입헌군주제가 지금 형태로 유지될 것이라는 데 나는 회의적이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의석수에 따른 상임위원장 배분 , 1인 2표 정당 명부 비례대표제,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동의해야 하는 국회선진화법을 통해 다당제, 합의제 민주주의, 사회적 대타협으로 상징되는 유럽모델로 서서히 이행해왔다. 독일이나 스웨덴 같은 후발 민주주의 국가들이 ‘연정(聯政)’과 ‘사회적 협약’의 합의제 민주주의를 선택한 것은 전쟁이나 식민지 혹은 전제 독재의 경험 때문이었다. 두려움이 협력의 정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 사회의 격차해소와 한반도 평화와 같은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갈 길도 바로 그 길이다.

직선제 개헌으로 ‘87년 체제’를 만들었다면 ‘2017년 체제’는 선거제도 개편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 다당제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려면 한 선거구에서 4명 이상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비례대표제의 전면적 확대가 가능하다면 그것도 좋다)로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바꾸고,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선거법 개정으로 가능하다고 보지만 개헌을 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으니 선거법을 바꾼 뒤 헌재의 판단을 받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선거제도를 전면적으로 바꿀 수 있다면 내년 대선은 ‘결과를 위한 연대’가 아니라 ‘결과에 의한 연대’가 가능해진다. 무엇보다 ‘민주’의 문재인, ‘외교’의 반기문, ‘미래’의 안철수, ‘공화’의 유승민, ‘시민’의 박원순, ‘진보’의 심상정, ‘연정’의 남경필, ‘통합’의 안희정, ‘중도’의 김부겸의 캠페인을 끝까지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지금은 제도 변화에 집중할 시간이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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