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나의 힘] 스카이라이프 대표 황규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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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간 『평행과 역설』에서 유대인 음악가 대니얼 바렌보임은 팔레스타인계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에게 “세상사란 반드시 처음에 전개될 듯하던 방향으로만 일어나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라고 말한다. 뻔한 말 같지만 일상에서 그 뜻을 터득하기란 쉽지 않다.

황규환(64) 한국디지털위성방송(스카이라이프) 대표도 40대 중반에 그 말을 깨달았다.

"인생은 일순간으로 판단할 게 아닙니다. 절대 간단한 게 아니더라구요. 한 사건에 들뜰 이유도, 낙담할 필요도 없어요."

1967년 KBS 기자로 방송 인생을 시작한 그는 79년을 잊을 수 없다. 반(反)유신 인사로 몰려 보도국 지방부장에서 경북 안동 국장으로 좌천됐다. 마흔살 팔팔한 나이, 속이 끓었고 의욕도 꺼졌다. 당시 그는 안동교당에서 원불교를 만났다. 세상 만사를 '은혜'의 관계로 바라보는, 즉 상극이 아닌 상생의 가르침에 마음이 끌렸다.

"안동에 온 지 한달만에 10.26 사건이 났습니다. 80년엔 언론통폐합이 단행됐죠. 당시 서울에 있었다면 분명 해직됐을 겁니다." 불운이 꼭 불행으로 연결되는 건 아님을 절감했다.

이후에도 비슷한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 90년대 초 후배들의 천거로 보도본부장을 노렸으나 기획조정실에 발령이 났다. "결과적으로 잘됐죠. 방송 전반을 파악하는 안목과 수완을 쌓는 계기가 됐어요."

그의 이력서는 꽤 화려하다. 아리랑TV 사장, 인천방송 회장을 거쳐 지금까지 방송계 '수장'을 연임했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그를 '위기의 해결사'로 부른다. 삐걱거렸던 각 방송사의 경영 상태를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렸던 것이다.

그는 상생.상보의 원불교 교리가 버팀목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위성방송은 출발부터 문제가 많았어요. 제가 들어와보니 패배 의식이 팽배했고, 내부 갈등도 극심했어요. 가장 먼저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한국통신.KBS.MBC 등 여러 출신의 직원을 융합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오전 4시에 일어나 명상으로 하루를 연다는 그는 "인생에 대박은 없습니다. 적은 게 쌓여 큰 걸 이루죠. 이걸 원불교에선 이소성대(以小成大)라고 합니다. 제가 배운 게 있다면 바로 그겁니다"라고 말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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