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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고산자, 대동여지도' 방방곡곡 로케이션, 그 곳이 알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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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넘고 물 건너 지도꾼이 밟았던 우리 땅의 절경을 찾아서


'고산자, 대동여지도' 방방곡곡 로케이션

‘고산자, 대동여지도’(9월 7일 개봉, 강우석 감독, 이하 ‘고산자’)에선 지도꾼 김정호(1804~1866 추정)가 짚신 신고 조선 팔도를 누비는 장면이 초반 20분가량을 장악한다. 지난해 8월 11일 백두산에서 첫 촬영을 시작해, 9개월 동안 백두산부터 국토 최남단 마라도까지 전국 10만6240㎞를 누빈 대장정. 그 이면엔 “CG(컴퓨터 그래픽) 없이 그 장소에 직접 가서 찍어야 한다”는 강우석 감독의 집념이 있었다. ‘고산자’는 지도에 잘못 표시된 점 하나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했던 그 시절,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古山子·김정호의 호)의 발자취를 쫓는 영화니까. 사전 답사부터 촬영까지 진행한 로케이션 장소를 세 번 방문하는 것은 기본. 심지어 30분 촬영을 위해 대여섯 시간씩 차를 타고 달려갔던 적도 있다. “화려한 색 보정, 현란한 카메라 기법 대신 김정호 선생의 눈에 비친 자연 그대로를 포착하고 싶었다”는 제작진. ‘고산자’ 덕에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새삼 알게 됐다”는 그들은 “매 촬영마다 맞아떨어진 날씨가, 마치 김정호 선생의 보살핌 같았다”고 입을 모았다.

촬영 로케이션 포토 코멘터리

1 철쭉이 만개한 황매산
김정호(차승원)의 사계절 여정을 그리는 몽타주 장면 중 봄 풍경. 지난해 말 주요 촬영을 모두 마친 후, 철쭉이 만개하는 5월까지 기다렸다가 추가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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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쭉이 만개한 황매산 [중앙포토]

화려한 색감이나 스타일리시한 색 보정은 배제했다. ‘조선 시대에 정말 저런 풍경이 있겠구나’ 싶은 풍광을 담아내고자 했다.” -최상호 촬영감독

전국을 돌아다니는 사극이라 촬영 회차를 70~80회 정도 예상했는데, 보충 촬영까지 합해 60회차로 마무리됐다. 강 감독님이 드라마를 압축적으로 촬영해 준 덕분이다.” -백선희 프로듀서

차승원은 김정호 선생의 초상화와 똑같이 생겼다. 분장을 마치자마자 소름이 끼쳤다. 김정호에 빙의된 차승원이 카메라 앞에 있었다.”-강우석 감독

2 경남 합천 황매산 어가 행렬
오프닝신에서 초라한 행색의 김정호가 흥선대원군(유준상)을 뒤쫓는다. 어가 행렬의 이동 거리를 알리는 ‘기리고차(記里鼓車·5리(약 2㎞)마다 종이 울리는 반자동 거리 측정기)’를 엿보기 위해서다. 지난해 늦여름, “가장 인상적인 풍광만 정확히 카메라에 담자”는 강 감독의 요구에 따라 드론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최상호 촬영감독이 드론을 쓴 단 두 장면 중 하나. 다도해가 펼쳐지는 몽타주 장면에서도 드론이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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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남 합천 황매산 어가 행렬 [중앙포토]

이동 거리가 많은 촬영에는 카메라를 여러 패키지로 나눠, 등산용 배낭처럼 여럿이 짊어지고 날랐다. 크레인·지미집(Jimmy Jib·구조물 끝에 카메라를 설치해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촬영 장비) 같은 대형 장비는 가급적 배제했다.” -최상호 촬영감독

3 얼어붙은 겨울 북한강
“김정호라면 남들이 엄두 내지 못할 길도 걸어갔으리라” 생각한 강 감독. 대동여지도를 완성하기 위한 김정호의 한겨울 고행을 표현하고자, 북한강이 얼기를 한 달여 동안 기다린 끝에 지난해 12월 촬영했다. 나룻배를 미리 띄워, 강과 함께 얼어 버린 배의 모습을 통해 시대적 정취를 그려 냈다. 헝겊으로 짚신을 동여맨 통증 탓에 배우 역시 연기가 쉽지 않았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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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얼어붙은 겨울 북한강 [중앙포토]

카메라 이동 차량은 너무 무거워 얼음이 깨질 것 같아서 모비(MOVI·경량화된 스테디캠의 일종)로 촬영했다. 촬영자의 허리에 자일을 장착해, 위험할 경우 바로 당겨 구조할 수 있게 했다.” -최상호 촬영감독

4 충청도 대표 명소 속리산
단풍이 물든 가을 산을 성큼성큼 걷는 김정호. 가을을 상징하는 장소로 속리산이 선택된 데는 이유가 있다. 제주도까지, 한반도 이남의 모든 도(道)를 넘나들던 강 감독은 로케이션에 충청도만 빠졌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가을 계곡만큼은 충청도로 지역을 한정해 촬영 장소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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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충청도 대표 명소 속리산 [중앙포토]

제철에 절경을 찾으니, 속리산은 관광객으로 붐볐다. 배우를 보려는 인파가 카메라 뒤쪽으로 가득했다.” -송경섭 스틸실장

5 울릉도로 향하는 길목, 강원도 양양 동호해변
“가지 못한 길이 가야할 길이지요.” 극 중 대사처럼, 김정호가 꿈에 그리던 마지막 행선지는 파도가 거세고 왜구의 침략이 잦아 쉽사리 닿기 어려운 섬 우산도(于山島·독도의 옛 이름)다. 우산도를 꿈꾸며, 그곳에 인접한 울릉도로 향하는 김정호. 쾌청한 하늘과 달리 파도가 높아, 험난할 그의 여정을 예감케 하는 이 장면 역시 “날씨가 준 선물”이라 최 촬영감독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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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울릉도로 향하는 길목, 강원도 양양 동호해변 [중앙포토]

김정호가 제주도 송악산에서 마라도를 내려다보는 장면을 촬영하던 날도, 바다가 해무 없이 열려 깨끗한 섬 풍광을 담아낼 수 있었다.” -백선희 프로듀서

6 절벽 아래 김정호의 집
‘고산자’는 세트 제작에도 공을 들였다. 순제작비 93억원(총제작비 130억원) 중 상당 부분이 미술과 세트 제작에 들어갔다. 사극마다 등장하는 저잣거리 세트도 버려진 세트장에 수억 원대 비용을 들여 리모델링했다. 딸 순실(남지현)이 4년 만에 돌아온 김정호를 기다리던 집은 경기도 양주 빙벽장 아래 새로 지은 것. 문경새재도립공원, 한국민속촌 등에서 촬영한 부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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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절벽 아래 김정호의 집 [중앙포토]

양반이 아닌 김정호에 대해 남아 있는 기록은 거의 없다. 그런데 그가 황해도에서 태어나 한양 성문 밖의 약초밭 지대 ‘약현(藥峴·지금의 서울 중구 중림동)에 살았다’는 기록이 있더라. 그에 따라 집 세트를 꾸몄다.” -백선희 프로듀서


7 모든 것의 시작, 홍경래의 난

이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홍경래의 난은, 김정호가 지도를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극 중에서는 한겨울이 배경이지만, 이례적으로 크랭크인 초반 늦여름에 세트에서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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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모든 것의 시작, 홍경래의 난 [중앙포토]

사극의 야외 장면에는 흔히 달빛 톤 조명을 쓰지만, 민란의 기운이 좀 더 느껴지는 붉은색 조명으로 극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최상호 촬영감독

8 전남 여수 여자만의 석양
사전 답사를 떠난 제작부가 보내온 전국 각지의 석양 절경 사진 중에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은 장소다. 곧장 여수로 향한 강 감독은 그날 일몰을 보고 로케이션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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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전남 여수 여자만의 석양 [중앙포토]

잠시 실루엣만 스쳐 지나가는 장면을 위해 먼 곳까지 달려온 차승원 덕분일까. 딱 원했던 만큼 예쁜 석양을 표현해 준 자연이 고마웠다.” -최상호 촬영감독

9 동틀 녘, 강원도 양양 동산포해수욕장
돌길을 걷는 듯하던 김정호가 고개를 돌리면, 다음 순간 동해 일출이 펼쳐진다. 이 장면을 촬영한 동산포해수욕장은, 규모는 작지만 수심이 얕고 깨끗한 바다로 유명하다. 제작진은 백사장 끝 바위밭을 촬영 장소로 점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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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동틀 녘, 강원도 양양 동산포해수욕장 [중앙포토]

동트기 직전 코발트빛 하늘을 담으려고 새벽 2시부터 준비를 서둘렀다. 이 사진에 보이는 지미집 카메라를 포함해 총 3대의 카메라로, 짧은 일출 시간 동안 다양한 앵글을 잡아냈다.” -최상호 촬영감독

10 한반도 북단의 명산, 백두산
천지의 상서로운 빛에 감동해, 산신에게 기도하는 김정호. 중국 측의 감독 하에 천지연에서 두 차례 촬영이 이뤄졌다. 일반적인 관광 코스가 아닌 데다 대형 카메라를 통제하는 탓에, 카메라의 액세서리를 떼어 내고 최대한 부피를 줄였다. 배우가 천지 앞에 서는 순간 두꺼운 구름을 헤치고 거짓말처럼 하늘길이 열렸다고. 백두산을 스크린에 담은 건 한국 상업영화 사상 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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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한반도 북단의 명산, 백두산 [중앙포토]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CG’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절대 아니다. 금강산 풍광도 담으려 했지만 방북 신청을 할 때마다 남북 정세가 악화됐다.” -강우석 감독

| ‘고산자’ 속에 진짜 ‘대동여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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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도 국가 관청은 지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용할 수 있는 건 극히 일부 특권층에 불과했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김정호는 정확한 지도를 그려 백성의 길눈을 밝히려 했다. 그가 남긴 대동여지도는, 가장 과학적이라 평가받는 조선 시대 한반도 실측 지도다.

1861년(철종 12년) 목판본을 제작해 1864년(고종 원년) 교정본을 재발행했다. 세로 6.7m, 가로 3.8m로 조선 전도 중 가장 큰 크기. 남북 22첩에 동서 20㎝ 간격으로 접은 분첩절첩식이라 휴대가 편했고, 목판 인쇄로 대량 생산을 가능케 했다는 점이 놀랍다. 가로세로 눈금으로 지도의 축척을 나타내고, 10리(약 4㎞)마다 눈금을 찍어 정확성을 더했다.

제작진은 이미 3년여에 걸쳐 대동여지도를 재현한 목판본을 만든 서각가 조정훈에게 의뢰해 극 중 목판을 마련했으며, 일부는 미술팀이 직접 만들었다. 대동여지도 인쇄본 전체가 드러나는 장면은 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실제 대동여지도 스캔 파일을 구매해 지도를 더욱 선명하게 구현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영화의 토대가 된 박범신의 소설 『고산자』(문학동네)를 읽고 “실제 대동여지도를 참을 수 없이 보고 싶었다”는 강우석 감독. 문화재청에 간청해,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대동여지도 원판 목판본을 촬영하기에 이른다.

“기절할 만큼” 압도적인 기운에 극 중 어떤 장면을 촬영할 때보다 엄숙했다고. 김정호의 철학이 서린 진짜 대동여지도 목판본은 ‘고산자’ 말미에 등장한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사진=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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