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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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엊그제는 독립기념관에 걸릴 벽화 『3·1운동도』가 말썽이더니 곧이어 서울 신촌역 앞 벽화 『통일의 기쁨』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3·1운동도』는 그림의 인물들이 왼손잡이여서 구설수에 오른 끝에 고쳐졌고, 『통일의 기쁨』은 의식화그림이라고 해서 강제로 지워졌다.
그렇지만 벽화들의 문제는 좀더 다른 차원에서 생각하게 된다.
『3·1운동도』는 어딘지 생동감이 없어서 기념 벽화로 적합하냐 하는 문제가 있다. 삽화나 민속화 혹은 포스터 같다는 혹평도 있다. 『통일의 기쁨』은 의식화그림의 여부나 철거권 유무에 앞서 도시 벽화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환경미화와 주민의 의사가 도시 벽화의 요체란 걸 생각해야 한다.
벽화의 기원은 기원전 2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돌도뉴 지방 라스코동굴벽화가 지금까지 효시로 알려져 있다.
사슴과 마소가 뒤엉켜 그려져 있다. 크기도 제각각이지만 큰 것은 실물 만한 것도 있다.
그 그림은 장식을 목적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고 일종의 수렵 주술용이다. 짐승의 몸체에 창을 꽂는 그림은 실제 사냥에서 큰 짐승을 잡을 수 있다는 구석기인의 생각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기원전 3500년 이집트최고의 그림인 히에라콘포리스의 고분벽화는 그 시대의 생활감과 함께 종교관이 표현되고 있다.
구석기인의 그림과 비교하면 이것이 훨씬 평면적이고 도식적이다. 그림자는 없지만 질서 감각이 뚜렷하다.
우리 고구려 고분 벽화들은 당시의 생활모습을 극채색으로 묘사하고 있어 그 회화성뿐 아니라 사료성이 돋보인다.
쌍영총이다, 안악 3호분이다 하는 고분의 벽화들은 우리 민족 미술사의 귀중한 보고다.
르네상스 시대의 벽화들은 특히 유명하다. 「레오나르도·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최후의 심판』등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더 인상적인 그림이 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1937년 나치공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1천5백여명의 희생자를 낸 한 마을의 비극을 고발하고 있다.
그것은 거대한 캔버스에 그려졌지만 「현대의 종교화」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또 구체적이고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멕시코 현대 도시 벽화들도 있다.
모두가 약동하는 정신이 담긴 그림들이다. 중요한 것은 작가의 뛰어난 기예 이외에도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공감이다.
우리 독립기념관의 벽화나 도시의 벽화들도 그런 혼의 소리를 담고있지 않으면 안 된다.
공동체의 삶과 작가의 고상한 정신이 결합해서 영구히 남을 걸작벽화가 만들어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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