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에 「선거철 형」기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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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민당에 요즘 뭔가 이상기류 같은 게 흐르고 있다. 김영삼 고문이 느닷없이 개헌 후 첫 대통령은 4년 임기의 단임제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말을 했고, 이민우 총재가 동교·상도동의 양대 계파를 이례적으로 비판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양대 계파가 은연중 조직을 확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신보수회를 중심으로 한 민중민주당, 한영수씨(11대 민한당 정책심의회의장)를 중심한 「제3세대 당」의 창당움직임도 나와 야권에서는 벌써 선거 철이 왔는가 하는 기분도 있다.
「4년 단임」의 참뜻에 대해 김 고문 측은 『합의개헌으로 민주헌법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제헌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첫 대통령이 한번만 하고 평화적 정권교체의 실례를 남긴다면 민주주의는 뿌리를 박게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발언은 지난해 물의를 일으켰던 김대중씨의 역할 분담론을 연상시켜 여러 가지 의미로 읽혀지기도 한다.
당시 김씨는 김 고문에게 『우리 두 사람이 명실공히 협력관계라는 점을 보이기 위해서도 미리 대통령·부통령후보나 대통령후보·당 총재식으로 장차의 역할을 정해놓는게 좋겠다. 예컨대 먼저 부통령을 한 사람이 그 다음 대통령을 맡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당신이 선택해도 좋소』라고 제의한바 있다.
이번 발언에 대해서도 당내에서는 4년 시한에 담긴 의미를 『나 먼저 할 테니 4년만 기다려달라』거나 『4년까지는 기다릴 수 있다』는 두 가지 폭의 해석이 설왕설래하고 있는 것이다.
후자일 경우 상대방의 강한 집념을 염두에 둔 양보이거나 『첫 4년은 과도기』라는 이유설명에도 나타나 있듯 자신이나 김대중씨가 아닌 제3의 인물 지칭 또는 정부·여당을 겨냥한 고도의 정치적 발언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발언에 대한 책임의 차원에서 『내가 한다면 4년간 하겠다』는 의지의 우회적 표현이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발언한 사람 외에는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김대중씨가 현 집권당으로부터 기피 당하고 있는 현실적인 여건을 부각시켜 『내가 먼저 해야만 당신에게도 차례가 올 수 있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추측에 대해 상도동계에서는 개헌 후 예상되는 대통령과열 경합을 완화하고 여야를 막론하고 각 세력이 보다 쉽게 타협할 수 있는 방안이 없을까 하는 충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풀이하면서 다소 서운하다는 표정.
이민우 총재는 지난 2일 당사에 나오자마자 기자들과의 코피타임에서 묻지도 않은 동교·상도동 겨냥 발언을 쏟아 놓았다. 『계룡산 민주산악회대회에서 「차기지도자는 김영삼」이라고 사회자가 유도하고 청중이 소리치는 장면을 봤다. 그런 식으로 상대를 자극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상도동 쪽을 꼬집더니 마침 총재실에 들어서던 유제연 사무총장을 향해 『며느리를 봤으면 봤지 자기계보 사람들만 쏙 빼내 피로연을 할 게 뭐람』이라고 동교동을 건드린 것이다.
이 총재의 이 발언은 즉각 반향을 불러 상도동사람들은 『이 총재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라고 했고 동교동 사람들은 목요 죽모임에서 『강남(상도동계)에서 뺨맞고 동쪽(동교동계)에다 화내는 격』이라고 발끈했다.
급기야 4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이 총재는 『유 총장의 모임이 미리부터 예정돼 있던 모임인줄 몰랐다. 지나가는 말로 농담처럼 한말인데…』라며 얼버무림으로써 곁으로는 일단락 됐다.
그러나 주위의 시선은 이 총재가 단순한 심기불편을 토로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지에 관해 의문과 함께 이 총재의 이런 발언이 후속행동으로 연결될 지에 집중돼 있다.
요즘 신민당에는 8월 전당대회 설이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김 고문이 당권실세화의 필요성에 따라 총재직을 맡을 것이란 소문이다.
당사자는 물론 동교동계에서까지 『얼토당토않은 소리』라고 일축하고 있어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고 있는 단계이긴 하다.
그렇지만 이 때문에 이 총재는 심기가 불편해 있다는 설명이며 그 날의 발언은 과녁이 상도동 쪽이라는 것이다.
상도동계가 『이 총재가 뭔가 오해하는 것 같다』고 한 것이나 동교동계가 『강남에서 뺨…』이라는 반응을 보인 것도 이런 풍설을 의식한 반응들이기도 하다.
이와는 별도로 이 총재의 방미 직후부터의 행동을 관심 있게 관찰하는 인사들도 있다.
김 고문 입당 전후 김 고문과의 불편한 관계임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며 김대중씨 쪽에 경사한 듯한 인상을 풍기던 이 총재가 국회헌특구성 과정에선 김 고문과의 호흡일치를 보였다.
그런가하면 헌특위원 선정에 대해서는 『총재가 결정할 일』이라고 단호한 모습까지 보였다. 이 총재가 양 김의 수렴청정에서 벗어나 독자노선을 걷겠다는 의지표현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장차 개헌협상에서 양 김의 「야심」과는 다른 결정을 할 수도 있다는 결의를 시사한 것이 아닌가 보는 추측도 있다.
여기에 극히 원론적 언급이었지만 『내각책임제를 하려면 의원선거제도부터 고쳐야한다』 는 발언까지 경치자 『내각책임제 하에서의 할 역할을 계산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리를 자연스럽게 접목시켜 『진의가 뭐냐』는 반응을 부르게 됐던 것 같다.
상도동계가 계룡산에서의 민주산악회 5주년 기념행사에 전국에서 4천여명을 동원, 외세를 떨친데 발맞춰 동교동계는 민헌연 전국지부결성에 열을 올려 세 확보작업에 돌입한 느낌.
동교동계는 원외인사를 주축으로 한 민헌연과 원내모임인 민권회, 예춘호씨의 한국인권문제연구소 후원회 등 다원적 체계를 이루고 있는 게 특징이며 전국조직 기반은 민헌연을 발판으로 하고있다.
민권회는 최근 목요 죽모임·인천연안부두 모임 등에서 평의원들의 당직자 비판이 잇달아 주목을 끌고있다.
비판에 나서는 선두주자로는 이용희 의원이 꼽히고 있으며 주로 이중재·양순식 부총재를 공격함으로써 계보 내 세력다툼(?)이라는 인상까지 주고 있다.
동교동계는 최근 김상신씨가 민주대학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세력확보작업을 벌이고 있어 한편으론 몹시 신경을 쓰고 있다.
김상현씨 자신은 『김대중씨를 결코 떠날 수 없다. 독자적 세력확보는 언젠가 그를 돕기 위한 것이며 그에게 인정받기 위한 수단』 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동교동내부에선 계속 경계의 눈초리.
민주대학은 이사장 김상현, 부이사장 조순형 의원, 이협 신 민주전선주간체제 외에도 후원회장에 송원영, 부회장 이진연, 이사장 신상우씨를 새로 임명하는 등 본격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김재광·이기택계도 조직확대 및 점검을 바짝 서두르는 등 신민당은 마치 전당대회라도 치르는 듯 부산한 모습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주위에선 『80년대 같은 경쟁관계의 재연이 아니냐』는 우려와 『선의의 경쟁은 에너지의 집약으로 나타나게될 것』이란 긍정적 시각이 교차하고 있다. <허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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