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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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안경 쓴 임금님의 모습은 얼른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엔 임금이 안경을 쓰고 책 읽는 얘기가 적혀 있다. 정조 23년, 1799년의 일이다.
실제로 우리 나라 안경의 역사는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정조 23년보다 2백년이나 앞서 안경이 있었다. 지금부터 4백년 전쯤이다.
안경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11세기 아라비아의 「알하젠」이라는 학자가 안경의 원리를 발견했다는 주장도 있고, 13세기 영국의 「로저·베이컨」이 렌즈를 만들어 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 피렌체의 유명한 성당 산타마리아 마지오레에는 안경 발명자의 묘비가 있다. 『안경의 발명자 「사르비노」, 여기 잠들다. 신이여 그의 죄를 용서하소서. 1317년』
이 묘비마저도 의심하는 학자들이 많다. 원래 안경은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그 고장의 한 수도사가 발명했는데, 이 세상에 전혀 없던 새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은 신을 거역하는 일이라는 생각에서 그는 안경의 발명을 쉬쉬하고 덮어두었다.
훗날 피렌체 사람들이 가명을 만들어 피렌체의 성당에 묘비를 세웠다는 것이다.
안경을 옛 중국에선 「아이타이」라고 했다.
구름 「운」자 옆에 사랑 「애」자를 붙인 「애」와 역시 구름 「운」자 옆에 「체」자를 곁들인 「체」 두 글자 모두 구름이 끼었다는 뜻이다. 「아이타이」라는 기록이 나오는 최고서는 조희곡이 쓴 『동천청록』이다. 송나라(960∼1260년)때의 일.
그렇다면 중국이 안경의 고향 같지만 『동천청록』은 후년에 개작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중국 유래설도 믿기 어렵다.
일설에는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13세기)에 돋보기를 쓴 노인 얘기가 나온다고 하지만 역시 원전에는 없는 얘기라고 한다.
더 이상의 안경 시비는 학자들에게 맡길 일이다. 구미엔 그런 학자들이 적지 않다. 독일의 「크레프」라는 사람은 『안경사논문집』(1958년 자이츠편)도 남겼다.
우리의 관심사는 우리 나라의 안경인구가 해마다 늘고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안경 인구는 30%나 된다. 10명에 3명 꼴이다. 서울의 국민학생 경우는 47%가 안경을 써야할 정도로 눈에 이상이 있다는 보고서도 있었다. 고교생의 경우는 더 많아 55%나 된다.
보사 당국은 안경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안경사제를 실시할 계획이다. 머지 않아 정기국회에 법안을 내놓을 셈으로 입법 예고가 되었다.
안경광학기술의 발달도 발달이지만, 정보시대와 함께 눈의 역할은 그 어느 시대보다 중요해졌다. 안경의 비중도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 안경사제도는 바람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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